[민간사찰 공방] 靑 “盧정부 숨길게 많았나”

입력 2012-04-03 21:43


“밀리면 끝장” 누가누가 많이 터뜨리나… 前·現정권 명운 건 폭로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파문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가 3일 전임 노무현 정권이 당시 국무총리실의 사찰 문서를 조직적으로 폐기했다는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이번 사건이 전·현 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본격 비화됐기 때문이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 어느 한쪽이 무너지지 않는 한 쉽게 끝나지도 않을 싸움이다.

전날 노무현 정권 때 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 민간인과 정치인을 사찰하면서 대상자들의 계좌는 물론 차명계좌까지 조사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한 청와대는 이날 한 발 더 나아갔다. 조사심의관실이 이전 정권 말기에 사찰 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폐기한 정황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사찰을 받았다는 증언들은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문서는 없다”며 “사찰 문서를 파기해 증거 인멸이나 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정황”이라고 말했다. 총리실 업무 지침에 따르면 공직자 감찰 결과 보고서는 공식 문서로 작성해 관련 기관에 통보하고 일정 기간 보관하게 돼 있다. 실제 조사심의관실이 2005년 8월 경찰공무원들의 비리 내용을 조사해 작성한 ‘하명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는 보존기한이 ‘영구’로 돼 있다. 이를 어기고 지난 정권 말기에 관련 보고서가 무더기로 폐기됐다는 것은 뭔가 숨길 만한 내용이 많았을 것이라는 게 현 청와대 측 판단이다.

이번에 민주당의 불법사찰 공세에 맞서 청와대가 공개한 정치인과 민간인의 사찰 보고서도 자료 정리과정에서 캐비닛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청와대와 총리실이 미처 파기되지 않은 지난 정권의 사찰 보고서를 추가로 찾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총리실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돌려받은 지난 정부의 사찰 보고서가 1000여건에 달하는 관측도 있다.

그런데 전·현 정권의 자료를 둘러싼 대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초 MB정권 출범 직후 양측은 대통령 기록물 유출을 놓고 거친 논쟁을 벌였다. MB청와대는 노(盧) 정권 청와대가 무단으로 자료를 빼돌렸다고 대대적으로 몰아붙였고, 당시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은 “전 정부를 공격해서 당장의 어려움을 넘기려는 의도”라도 반발했다.

4년이 흘러 유사한 사건이 또다시 터진 셈이다. 정권 초기와 말기라는 시기상 차이만 있을 뿐이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에 사라진 사찰 보고서도 당시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지 않은 자료 중 일부일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청와대 측의 사찰 보고서 폐기 의혹 제기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진영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야당이 계속 막 나가면 우리 측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주변에서 ‘준비된 한 방’이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 것도 이를 염두에 뒀다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사안의 성격상 전·현 정권에다가, 여야가 뒤엉키면서 지루한 정치 공방으로 흘러갈 개연성이 높다.

한민수 기자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