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트 부는 딸 있어 행복합니다”… 자폐 딸 11년 뒷바라지 미니영화로 만든 母情
입력 2012-04-02 19:06
“가난하지만 건강한 남편이 있고, 플루트를 부는 딸이 있어 행복합니다. 발달장애인지원법이 제정돼 자폐인도 일자리를 갖고 결혼도 하는 행복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1인 감독·촬영·편집으로 13분14초 분량의 작은 영화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을 선보인 박상현(47·여)씨는 2일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을 맞아 영화를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씨가 만든 영화 도입부는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씨의 딸은 초등학교 입학식 날 운동장에서 제자리에 서 있지 못했다. 담임교사는 딸을 뒤쫓아 갔지만 좀처럼 잡지 못했다. 그런 상황은 200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소개됐다. 모든 사람이 자폐아의 이야기를 숨기려 할 때 자신과 자폐증 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공개한 것이다.
딸은 생후 17개월 때 자폐아로 판정받았다. 그 딸이 이제 인천작전여고 3학년이 됐다. 최근 2년간 문화바우처 사업을 통해 월 2만원으로 플루트를 배웠다. 월 2만원에 주 2회씩 전문가에게 플루트를 배우게 된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박씨가 만든 작은 영화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은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장애인부모의 집회에서 20여명의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며 삭발을 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부모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며 머리카락을 잘랐다. 지난해 지역사회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사업 일환으로 실시된 민들레 장애인야학 미디어교육에서 만난 강사가 당시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 사진도 영화의 한 장면이 됐다.
영화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의 배경음악은 박씨의 딸 혜림(18)양의 플루트 연주다. 박씨와 혜림양은 음악적 재능을 가진 장애 청소년과 부모로 구성된 예비사회적기업 ‘영종예술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박씨의 꿈 많은 고교시절 이야기도 들어있다. 경기도 성남 남한산성 인근에서 도시 빈민으로 살았던 기억을 더듬어 옛 동네를 찾아가는 여정도 영화는 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여고시절의 동창들과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 가서 찍은 영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여고시절처럼 동창들은 영화 속에서 깔깔깔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화면 가득히 퍼져 나온다.
박씨의 작은 영화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은 장애인의 달을 맞아 오는 5∼7일 대학로 CGV 무비콜라주에서 열리는 제1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에 따르면 국내 자폐인은 4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