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파일] 산과의료 붕괴 위기 막으려면

입력 2012-04-02 18:28


최근 출산율 저하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 현장에서도 산부인과, 특히 산과 진료의 기반이 무너지는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원인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분만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의 부족이다. 매년 산부인과 전공의가 급감하고 있다. 2004년 263명이나 되던 신규 배출 산부인과 전문의 수는 2012년 90명으로 줄었다. 그 뿐이 아니다. 남성 산부인과 의사는 해마다 10명 남짓 배출되는데 그친다.

산부인과 여의사들은 육아 등의 부담으로 분만과 야간 당직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 남자 산부인과 의사의 급감은 분만을 담당하는 산부인과 의사 수를 감소시키고 분만 취약 지역을 더욱 확장시키게 된다.

산부인과 지원 감소로 인한 또 하나의 문제는 의료의 질적 저하이다. 향후 진료, 연구, 교육에서 산과를 이끌어갈 훌륭한 인재들이 배출될 가능성이 희박해지면 그로 인한 피해는 산모와 태아에게 그대로 옮겨지게 마련이다.

둘째, 경영악화에 의한 산과 진료의 위축이다. 분만이라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분만실의 인력과 장비를 상시 가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의 저수가 정책으로 이를 운영하기 힘든 병원이 많다.

의료법 개정으로 과거와 달리 300병상 이하의 종합병원에 산부인과 개설 의무가 없어져 경영 논리에 따라 언제든지 분만실의 문을 닫을 수 있게 된 것도 문제다. 산과 진료를 병원 경영의 논리로만 접근하게 될 경우 2010년 현재 전국에 808개에 불과한 분만실의 숫자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셋째, 법적·정책적 문제이다. 4월부터 본격 시행된 의료분쟁조정법은 무과실 보상 제도를 도입, 환자가 사고임을 주장할 경우 과실이 없더라도 산부인과 의사가 일정 비용을 부담하게 돼 있다. 정부는 이밖에 거의 모든 산부인과 수술의 포괄수가제화, 초음파 진료의 건강보험 확대 적용 등도 예고하고 있다. 모두 산부인과 의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정책들이다.

의학잡지 란셋(Lancet)에 따르면 2010년 기준 10만명당 모성 사망 빈도는 미국이 17명,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수준의 11명이다. 이는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사들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실현 불가능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들로 하여금 산부인과, 특히 산과 진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정책이 계속 이어진다면 이와 같은 의료의 질 및 수준 유지는 더 이상 어려울 것이다.

어떤 직업이든 사회 변화로 인해 쇠락할 수도, 사라져 갈 수도 있지만 산과 의료 시스템을 이렇게 망가뜨려선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아들, 딸들이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현수 동국대 일산병원산부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