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봄빛과 인생
입력 2012-04-02 18:36
花殘自有重開日
人老何由更少年
꽃은 시들어도 절로 다시 필 날이 있지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젊어지겠는가.
명(明) 우겸(于謙, 1398∼1457) 독작(獨酌) ‘충숙집(忠肅集)’
시의 전체 내용은 봄날의 꽃을 보면서 우선 만사를 제쳐 놓고 술을 마시며 즐기자는 내용이다. 이 구절만 따로 떼어 놓고 봐도 사람을 감회에 젖게 하는 힘이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곡강(曲江)이라는 시에서 ‘술빚이야 늘 가는 곳마다 있지만,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었지(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라고 노래했다. 유한하여 늙기 쉬운 인생, 풍광이 아름다운 봄날을 마땅히 즐겨야 한다는 태도이다. 물론 큰 뜻을 품고도 그 뜻을 펴지 못하는 문인의 불평지기(不平之氣)가 저변에 깔려 있다.
그러나 봄 풍광을 음미할 줄 아는 풍류 의식 역시 도저하다. 이백 역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술 석 잔이면 대도에 통하고, 술 한 말이면 자연과 합하네(三盃通大道, 一斗合自然)’라고 했다. 옛 시인들이 술을 즐기자는 시를 보면 그 계절이 봄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봄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아름다울수록 슬프고 외롭기도 한 것! 만고의 봄빛은 무심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송나라 때 증조가 편찬한 ‘유설(類說)’이란 책에, ‘찬 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재촉하고, 뜬세상의 새 사람이 옛 사람을 대신한다(寒江後浪催前浪, 浮世新人換舊人)’라는 시구가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인생사, 그 필연의 법칙을 밀고 밀리며 흘러가는 강물에 비유했다. 신구의 교체는 봄에 특히 새롭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 성의를 다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일중독이 되고 집착으로 보여 오히려 사람을 질리게 한다. 아름다운 봄날 술을 한 잔씩 들며 털 것은 털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도 순리를 아는 대인의 풍도가 아니겠는가. 술을 한 잔 들면 옹졸하던 배포도 커지고 좋은 풍광을 보면 마음도 새로워질 것이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