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임항] 자전거 대 자동차
입력 2012-04-02 18:36
자전거의 결정적 단점은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울 때 이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속도를 제한하는 맞바람과 오르막길도 문제다. 한국교통연구원 원장을 지낸 황기연 홍익대 교수는 “주요 통근로를 고가터널 형태의 투명하고 긴 튜브로 연결해 자전거만 다니는 튜브형 자전거 급행도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황 교수는 지난달 14일 로하스 리더스포럼 초청강의에서 “통풍방향을 달리는 쪽으로 내주면 시속 40㎞의 고속주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곧 개통될 세종시∼대전간 국도에 튜브형 자전거 급행도로를 만들면 10여 분만에 주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이런 아이디어를 2010년 8월말 이미 제시했지만, 언론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지난달 30일 완공된 세종시∼대전 유성구간 왕복 8차선국도 8.8㎞의 중앙부에는 폭 3.9m의 자전거도로가 설치됐다. 그러나 고가형 튜브는 채택되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왜 나왔을까. 우리나라는 교통정책과 세제에서 철저하게 승용차 운전자를 우대한다. 보행자와 자전거는 물론이고 심지어 대중교통도 자주 뒷전으로 밀린다.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우대하겠다는 교통당국의 다짐과 달리 차로 다이어트와 출퇴근용 자전거 전용도로의 확대는 실행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차 한 대당 주행거리가 너무 길다. 보유단계 세금이나 보험료 부담이 주행단계보다 많아 차를 세워두면 손해라는 인식이 뿌리 깊기 때문에 유가가 올라도 주행거리는 줄지 않는다. 결국 도로, 주차공간과 같은 공공서비스의 재분배를 통해 승용차 운전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통유발부담금은 1990년 도입 이래 단 한 차례도 오른 적이 없다. 승용차 도심 진입료도 십수년째 남산터널에서만 시행중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교통유발부담금 및 도심주차료 인상과 혼잡통행료 부과지역 추가지정 등을 거듭 요구했다. 서울시는 2007년 연구 결과를 토대로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안을 제안했으나, 국토해양부는 파급효과 분석이 필요하다며 계속 결정을 미루고 있다.
승용차 소비구조의 왜곡도 심각하다. 국토해양부의 규모별 승용차 등록대수 통계에 따르면 대형이 2002년 143만대에서 2010년에는 334만대로 133.4%, 중형이 435만대에서 762만대로 75.2% 증가한 반면 소형은 322만대에서 154만대로 52.2% 줄었다.
한국은 2010년 기준 경차·소형·중형·대형 비중이 각각 8.3%, 11.3%, 55.9%, 24.5%로 중·대형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대조적으로 일본은 각각 26.8%, 25.0%, 26.3%, 21.9%의 고른 분포를 나타낸다. 프랑스는 39.0%, 35.0%, 11.0%, 15.0%, 이탈리아는 55.0%, 26.0%, 7.0%, 13.0%로 우리나라와 반대로 경차와 소형차 비중이 압도적이다.
그것이 과연 주로 체면문화 때문일까. 왜곡된 세제와 승용차 중심의 인프라가 더 큰 요인이다. 그런 면에서 환경부가 추진중인 ‘자동차 이산화탄소 연동 보조금-부담금제도’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일정 수준 미만인 승용차에 대해 구입지원금을 주고, 이상인 차종에는 추가로 부과금을 물리는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 최대 150만원의 보조금을 전제로 중형차 보유자의 40%정도가 소형차나 경차로 전환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세컨드카로서의 경·소형차는 늘면서도 중·대형차도 줄지 않는 역효과가 나타날 우려도 있다. 결국 구입단계의 상벌제도도 ‘1t짜리 애물단지’를 이용하는데 물리는 페널티를 늘려가는 정책을 병행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임항 환경 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