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롯데제품 홍보하려 과학관 지어줬나
입력 2012-04-02 18:25
국내 5위 그룹인 롯데가 35년 동안 써오던 사원 배지를 바꿨다. 붉은 색 바탕에 물결무늬의 L자 3개가 연결된 원형 배지를 영문자 ‘LOTTE’를 그대로 쓴 금색 배지로 변경한 것이다. 계열사마다 다르게 써 오던 기업이미지(CI)도 통일하기로 했다. 2018년에 아시아 10위권 그룹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중시한 결과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뤄지는 롯데의 활동은 이런 노력과는 한참 멀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울산과학관내에 운영하는 과학체험관이다. 지난해 과학관 개관과 동시에 문을 연 이곳은 과학원리를 이용한 체험관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사실상 롯데그룹의 홍보관이나 다를 바 없다. 이름부터가 롯데월드 캐릭터인 ‘로티로리’를 붙였다. 이러다보니 체험관의 80% 정도는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의 제품 홍보로 이루어진다. 과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영상패널로 보여주고 충치예방 효과가 있다는 자일리톨 껌을 선전하는 식이다.
롯데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과학관 관람인구가 1년 만에 39만 명에 이르는 등 지역 명소로 자리 잡자 건물 안에 자사 패스트푸드점인 롯데리아와 롯데자판기 설치를 요구했다가 과학관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고 한다. 체험관 공간과 운영사무실도 과학관 측으로부터 무상 임대받아 사용한 것을 보면 기부자의 지위를 넘어서 과학관 일대를 미니 롯데월드로 꾸밀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거금을 들여 과학관을 지어줬는데 작은 홍보관 하나 운영하는 게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기부는 순수해야 한다. SK그룹이 지은 울산대공원에서 보듯 기업들은 시민들의 도움으로 기업이 성장한 데 따른 감사의 표시로 기부를 한다. 롯데그룹 역시 창업자 신격호 회장이 고향발전을 위해 과학관을 지어 기부했다. 이런 장소를 자사 제품의 마케팅 공간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기부의 숭고한 의미를 훼손한다. 과학관에서 롯데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 기부의 참뜻을 실천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