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양기호] 도쿄 스카이트리
입력 2012-04-01 17:56
대지진과 방사능으로 우울한 소식만 넘쳐나던 일본에 모처럼 반가운 뉴스 한마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파탑인 도쿄 스카이트리가 지난 2월말 완공된 것이다. 도쿄도 스미다구(墨田區)에 건설된 스카이트리는 3년 전부터 도쿄시민 뿐만 아니라 일본국민들의 즐거움이었다. 마치 귀여운 어린애 키가 쑥쑥 자라듯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간 것이다. 높이 무려 634m. 전파탑으로는 세계최고 높이로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그 모습을 매일처럼 사진 찍은 기록마니아도 있어서 매스컴에서 소개하고 있다. 작년 3·11 대지진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선 것을 생각하면,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희망탑인 셈이다.
태평양과 후지산 눈앞에
스카이트리를 세운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 에펠탑처럼 도쿄를 상징하던 도쿄타워가 전파탑 기능도 겸하고 있는데 도심 고층빌딩에 막혀 전파장애를 가끔 일으키자 일본NHK와 도쿄 내 5개 민영방송이 합자로 새로 만든 것이다. 총공사비는 650억엔, 우리 돈으로 약 9000억원에 달한다. 유지비용은 텔레비전방송국 임대료나 관광객 수입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5월 22일 개관하면 많은 관광객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태평양과 후지산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즐기는 구름위의 산책 비용은 1인당 약 4만원. 인근지역은 지역활성화로 벌써부터 기대에 넘쳐 있다.
그렇다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카이트리가 위치한 도쿄도 스미다구는 시타마치(下町)로, 서민동네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엄청난 인공탑이 들어서니 경관도 나빠지고, 대지진 시에 피해가 커질까 전전긍긍하는 주민들도 있다. 21세기에 개발도상국처럼 높은 상징물을 세우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비난도 있다. 프랑스 르 피가로지의 레지스 아르노 기자는 스카이트리가 문명의 진보는커녕 쇠퇴의 심벌이라고 비꼬고 있다.
그러나 일본사회가 힘든 시기이다보니, 도쿄 스카이트리는 길었던 겨울을 보내고 새봄과 같이 핀 희망의 상징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경제가 차츰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2월 중순 금융완화 조치를 발표한 뒤, 엔화가 하락하여 11개월 만에 달러당 84엔까지 떨어졌다. 수출기업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불과 한 달 만에 기업채산성이 10%나 높아졌다. 주가도 상승하여 3월 19일 닛케이평균지수는 1만141엔으로 3·11 대지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주요 경제연구소는 미국경기회복과 유럽사태 진정에 힘입어 2012년도 일본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2%로 높여 잡고 있다.
일본 부흥의 상징 될 수도
대표적인 섬유기업인 도레이는 1·4분기 결산에서 사상최고인 영업이익 1000억엔을 돌파할 전망이다. 최대 강점인 일본의 부품소재산업은 3·11 대지진 여파에도 불구하고 잘 나가고 있다. 삼성전자 매출이 급성장하면서 연동혜택을 보는 것이다.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도 산업자동화나 영농기계화로 일본기계류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지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는 단기적으로 1인당 GNP나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지만 장기적으로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2005년 미국 카트리나 태풍,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의 경우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도쿄 스카이트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일본부흥의 상징탑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600m 중국 광저우타워를 추월한 것, 엄청난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634m의 스카이트리가 흔들리지 않은 것, 고공에서 일하던 공사장 인부 한 사람도 다치지 않은 것은 일본의 기술력을 보여준다. 움츠러든 일본인의 자존심을 모처럼 다시 살려준 셈이라고나 할까.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