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자화상

입력 2012-04-01 17:55


지난 30년 가까이 노숙인에서 대통령까지 거의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탓인지 사람의 무리들을 보면 무슨 일을 하는 집단인지 대충 알아맞힐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속했던 언론 집단의 속성은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여러 집단 중에서 세상이 흘러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들은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별로 없는 곳의 종사자들이다. 문턱이 높아 ‘민간인’들은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언론사도 그중 하나다. 오랜 기자생활을 접고 강의에 전념하다 최근 작은 회사를 시작하면서 느낀 소회다. 다시 언론사에 드나들어야 할 일이 생기면서 담당기자 접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생각이 스친다.

전화로 “만나서 말씀을…” 하면 상대가 누구며 무엇 때문인지 묻지도 않고 거의 다 “이메일로 보내세요” 한다. 홍보자료를 들고 왔다 하면 현관 안내데스크나 사무직원에 맡겨놓고 가란다. 목소리에는 ‘뭇 사람’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가득 차 있는 듯하다. 나와 비슷한 입장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물론 예외도 없는 건 아니다.

그 언론사 내부 매커니즘, 담당 기자의 부서까지 파악이 된 상태에서의 접근도 이 지경이니 일반 ‘민간인’이 다가가는 건 언감생심일 게다. 억울한 일이나 사회의 문제점을 언론에 알리려는 소시민들에게는 난공불락의 거대한 벽처럼 느껴질 것이 자명하다.

기자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 건 채, 굵직한 출입처,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 누리꾼들의 댓글만 접할 때 과연 제대로 된 민심을 읽어낼 수 있을까. ‘기자는 발로 뛰어야 한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들린다. 권력과 자본에 의한 통제, 언론사의 제약요건 등 숙명적 걸림돌 외에도 그들 스스로 발을 묶고 있다니 안타까운 얘기다. 자신이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취재원만 접하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주관적 진실’, ‘선택적 지각’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고 미디어 소비자가 뉴스공급자로 참여하며 포털사이트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요동치고 있다. 케이블 방송과 인터넷 신문이 수도 없이 생겨나 지상파 방송과 아날로그 종이신문의 설 땅이 갈수록 위협받고 있는데 많은 기자들이 ‘그 옛날 호시절’로 착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그야말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뜨거운 현장, 소외된 사각지대의 차별화된 콘텐츠로 승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기자,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 제대로 된 사회의 목탁이라면 말이다. 멋진 기자가 되기 위해 가슴 설레던 초년병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언론인으로 현장을 누비길 기원한다. 이런 외부의 시선도 모른 채 ‘기자 노릇 잘하고 있다’고 내심 오만했던 그 시절의 내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하는 얘기다.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