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택 (19) SBS 개국 1주일 만에 꿈의 ‘신우회 예배’를
입력 2012-04-01 18:00
SBS 개국 후 일주일쯤 지났을까, 아침에 방송국에 출근한 나는 깜짝 놀랐다. 서울 여의도 본사 게시판에 신우회 설립예배를 알리는 공고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렵사리 관현악단의 월요예배를 만든 뒤 SBS 신우회를 설립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던 중이었다. 흥분된 나는 부리나케 사무실로 달려가 구내전화로 신우회에 가입 의사를 알려줬다. 알고 보니 ‘코미디계의 대부’이자 당대 최고의 연출가였던 고(故) 김경태 장로님이 주도하신 것이었다.
나는 신우회의 설립예배를 누가 봐도 폼나게 드리고 싶었다. 단원들에게 웬만하면 예배에 참여해 함께 반주를 하자고 부탁하고는 그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예배시간보다 한 시간 빨리 나와서 미리 준비를 하자는 부탁도 했다.
마침내 예배 당일, 나와 단원들은 오전 6시에 도착해 저마다의 악기를 조율했다. 한데 6시30분이 지나도록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심 걱정이 됐다. ‘SBS에는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나? 그래도 그렇지, 김 장로님은 오실 텐데….’ 순간 장소가 방송국 옆에 있는 여의도관광호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호텔로 뛰어갔다. 하지만 거기서도 그런 예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해서 게시판으로 가서 공고를 다시 읽었다. ‘엥…’ 예배시간이 오전 7시가 아니라 오후 7시였다. 나의 실수였다. 흥분한 내가 7시만 읽고 당연히 아침이겠거니 했던 거였다. 단원들에게 미안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백배 사죄를 하고는 저녁에 다시 한 번 만나자고 부탁했다.
그날 저녁의 SBS 신우회 첫 모임은 그야말로 은혜롭게 진행됐다. “선배님도 크리스천?” “아니, 자네도 교회에 나가?” 마치 이산가족을 상봉한 것처럼 서로들 반가워하고 고마워하며 손을 잡고 예배를 드렸다. 감격의 눈물이 예배장에 일렁였다. 예배를 마친 뒤 돌아가며 인사하는 시간에 내가 아침에 일어난 에피소드를 소개하자 장내에 한 바탕 폭소가 터졌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한 젊은 여자 아나운서가 내게로 와서 인사하고는 한 마디를 했다. “단장님이 얼마나 이 예배를 사모하셨으면 그랬겠어요.”
나는 SBS 신우회를 나름대로 열심히 섬겼다. 아니, 내가 아니라 우리 단원들이 그랬다. 특히 믿지 않는 16명의 단원들이 군말 없이 같이 움직여준 덕분이다. 이들은 나중에 거의 복음을 받아들여 신앙인으로 거듭나기까지 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찬양사역도 하고 KBS MBC와 함께 3사가 연합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SBS 개국 멤버인 우리 단원들은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저마다 자기 파트에서는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이들이었다. 게다가 음악인으로서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이끌어가면서 그 중심에 신앙을 두고 싶었다. 하나님 중심으로 뭉쳐야 악단을 순조롭게 끌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믿지 않는 단원들의 전도가 선결과제였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장 직위를 앞세워 강압적으로 하다간 부작용이 있을 게 뻔하고, 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을 위해서 기도하기로 했다. 집 거실 벽에다 전체 25명의 이름을 붙여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들을 위해 무릎을 꿇었다.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의 심정으로 벽을 쳐다보고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를 해나가자 내 속에서 단원들에 대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솔솔 솟아났다. 안 그래도 SBS라는 조직 안에서 한 가족으로 엮어진 게 고맙고 감사한데, 그 마음이 두 배, 세 배로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러자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그분은 각양의 방법으로 한 명씩 복음 앞에서 무릎을 꿇게 만드셨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