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찰 문건 파문] 이영호, 소환 불응 왜… 갑자기 터진 불법사찰 문건에 시간벌기 작전?
입력 2012-03-30 18:51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의 핵심 인물인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검찰 소환에 불응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전 비서관은 변호사를 통해 29일 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다음달 2일에 출석하겠다”고 소환연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예정대로 30일 오전 10시에 출석하라고 요구했으나 이 전 비서관은 끝내 검찰청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전 비서관의 소환연기 요청은 29일 밤늦게 공개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보고서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직자, 공기업 임원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광범위하게 사찰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을 사실상 지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전 비서관의 입장은 상당히 난처해졌다. 이 전 비서관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김종익 KB한마음 대표 사건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의 업무미숙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청와대나 제가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한 사실은 결코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하지만 공개된 보고서에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 지시를 받아 조직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검찰은 이 전 비서관이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청와대 윗선을 연결하는 핵심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당초 증거인멸 지시 의혹에 대해서만 검찰에서 해명하려고 했던 그의 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해졌고, 관계기관과 대책을 논의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장진수 전 주무관 변호인인 이재화 변호사는 30일 “이번 사건을 자기 선에서 무마하려고 했으나 불법사찰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판이 커지자 전략을 다시 논의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검찰이 불법사찰 보고서가 작성된 경위, 청와대가 하명한 사실이 있는지, 불법사찰 보고서를 청와대 윗선에 전달했는지 등을 추궁할 것에 대비해 답변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도 사전에 주변 사람과 깊이 상의해 정리한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이번에도 검찰 소환을 앞두고 주말을 이용해 관계자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소환을 연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도 이 같은 전략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이 전 비서관에게 31일 오전 10시 소환을 재통보했다. 하지만 검찰이 이 전 비서관에게 시간을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