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현장을 가다… 서울 은평을] “지역 뭐가 달라졌나”-“무조건 야당 뽑겠나”
입력 2012-03-30 19:17
‘영원한 MB(이명박)맨’인 새누리당 이재오 후보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의 입’으로 활동했던 통합진보당 천호선 후보가 맞붙은 서울 은평을 선거전은 전·현 대통령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승패에 따라 집권여당 친이명박계와 야권의 친노무현 세력 중 하나는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과가 지역구 승리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후보와 천 후보는 국민일보와 GH코리아가 지난 2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각각 44.9%와 44.2%의 지지율을 기록해 초박빙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에서만 4선을 하고 5선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이 후보는 30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자전거로 이동하며 ‘나홀로’ 유세를 했다. 그는 2010년 7·28 재선거 당시 필승전략이 됐던 ‘조용한 선거’의 효과를 알고 있는 듯 차량도 로고송도 없이 지역구를 바닥부터 훑었다. 7시 대조동에서 출근인사를 마친 뒤 구산동을 거쳐 구파발에서 동네주민들과 쓰레기 줍기 행사에 참여했다. 오전 11시30분쯤에는 진관동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500여명을 상대로 배식봉사 활동을 벌였다.
관록의 정치인답게 익숙한 솜씨로 밥과 국을 배식판에 담은 이 후보는 구수한 경상도 억양으로 “많이 드이소”를 외쳤다. 그러자 일부 노인들이 농담 섞인 목소리로 “같이 늙어가면서 무슨 배식 봉사냐, 여기 와서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하는 바람에 웃음이 쏟아졌다.
집권당 후보로 힘이 있다고 알려진 탓인지 그를 만난 주민들은 경기 부양과 취업 청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0년째 식당을 운영 중이라는 박철민(66)씨는 “낙후지역을 꼼꼼하게 찾아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도 “그런데 우리 지역이 뭐가 변했는지 느껴지는 게 없다”고 뼈있는 한마디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박씨 손을 잡고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안다”며 “서민 여러분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소통할 줄 아는 의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는 천 후보의 선거 구호는 ‘대한민국을 바꾸는 은평의 선택’이다. 정권 심판과 세대교체, 세력교체 등이 모두 함축된 구호다. 천 후보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번에는 바꿀 수 있겠죠”라고 물었다. 천 후보는 “현 정부 최고 실세였던 이재오 후보를 마지막으로 해서 정권 심판을 종결짓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천 후보는 오전 6시40분쯤 지하철3호선 구파발역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는 것으로 유세 일정을 시작했다. 이어 인근 대조초등학교를 거쳐 낮 12시쯤에는 은평구민체육센터를 찾아 운동을 하는 주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했다. 천 후보는 “지금 여론이 10% 포인트가량 뒤진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선거운동에 전념하고 있다”며 “이번에 바꾸지 않으면 은평지역 개발은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재개발이 가옥주에게 지나친 부담을 준다. 세입자 대책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돼 주민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며 지역구 공약도 하나하나 꺼냈다.
그는 오후에는 유세차량에 몸을 싣고 지역 곳곳을 찾아 지지를 호소한 뒤 “하루가 너무 짧은 것 같아 속이 탄다”고 말했다. 불광동에서 만난 60대 할아버지는 천 후보와 악수를 나눈 뒤 “사는 게 더 힘들어졌다고 해서 무조건 야당 뽑아줄 거라고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며 “야당 의원이라고 서민 경제 좋게 해준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고 따끔한 한마디를 남기기도 했다. 당황한 천 후보는 “옳으신 말씀”이라며 “이미지에 기댄 후보가 아니라 서민들을 생각하는 정책으로 무장한 후보가 되겠다”고 답했다.
정통민주당 이문용 후보도 지역 곳곳에서 유세를 하며 한 표를 호소했다.
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