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호림박물관 30년
입력 2012-03-30 17:42
유홍준 이태호 윤용이 등 미술사학계 스타 교수가 포진한 명지대가 지난해 9월 27일 구순의 노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미술사학 분야에서 국내 첫 명예박사였다. 박물관 발전에 기여했고,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렸으며, 후학양성에 이바지한 공로를 평가 받았다. 명지대에도 장학금 5억원을 쾌척했다고 한다.
이분이 윤장섭옹이다.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나와 농약사업으로 돈을 번 그는 1981년 사재를 출연해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이듬해 호림박물관을 열었다. ‘호림’은 윤옹의 아호다. 이 박물관은 국보 8점, 보물 46점을 비롯해 1만5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토기와 도자는 삼성미술관 리움을 넘어서는 정상급 컬렉션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개성 사람이다. 개성은 문화재의 전통이 있으면서 비즈니스로 유명한 도시의 특성을 다 갖췄다. 개성은 고려 도읍이라 유형문화재가 산재했거니와, 일제시대에는 국립박물관 개성분관이 있어 김재원 관장 등 개명한 문화인들의 출입이 잦았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황수영 동국대 총장, 진홍섭 이화여대 교수가 그의 문화재 사랑에 동행한 고향 선후배다.
윤옹은 검약하고 겸손하다. 그는 사업을 금융업으로 확장해 큰 부자가 됐는데도 근검절약하는 태도는 변치 않았다. 남대문 근처 삐걱삐걱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는 중국집에서 자장면 먹기를 즐겼다. 언론 노출도 꺼려 오래된 문화부 기자 중에서도 그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사람이 드물다.
한 푼이라도 아끼면서 필요할 때는 아낌없이 쓰는 송상(松商)의 전형이다. 호림박물관은 그의 재산과 인생을 쏟아 부은 것이었다. 1970년대 초부터 사들인 유물을 모아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2009년에 마침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번듯한 박물관 건물을 짓기까지 그가 쏟은 열정은 문화재에 미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호림박물관에서 지금 30주년 기념전을 열고 있다. 기원 전후부터 통일신라 때까지 토기 200여점을 모았다. 흙을 다루는 고대인들의 손길이 영감을 얻어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 토기다. 박물관의 사무동 건물 역시 빗살무늬토기에서 이미지를 따와 지었다고 하니 집 주인의 지독한 토기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