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삶의 풍경] 봄 마중
입력 2012-03-30 18:10
봄이 오면 먼저 매화를 만나러 마중 갑니다. 아직 새순이 나올 기미 없는 추위가 오락가락하는 변덕을 뒤로 하고 멀리 남녘으로 몸 마중 갑니다. 덧없는 삶은 어이할까요? 가진 것 없이 황량한 나의 몸뚱이는 산매(山梅)와 사랑에 빠집니다. 인적이 끊긴 고즈넉한 산사에 인연을 다 한 사람 놓으려 매화에게 달려갑니다. 매화를 보고, 듣고, 벗하며 황량한 나의 허구와 욕심을 버립니다. 동면을 깨우는데 매화만함을 어디에 견줄까요?
어떤 꽃과도 봄을 다투지 않는 매화는 바다와 산과 바람과 편백나무 사이로 사각사각 지나는 시간의 길목에서 고매(古梅)와 사랑에 빠집니다. 질긴 인연 뒤로 하고 사람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봄 마중은 어쩌면 장엄한 내 의식이 된 지 오래네요. 아무리 추워도 향을 팔지 않는 변덕이 죽끓는 이 세상에 매화만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벗들과 봄 마중 다녀옵니다. 지질구질한 삶의 진액이 소진되고 벌써 봄이 화들짝 왔네요. 봄 마중에 매화는 참으로 으뜸이더군요.
그림·글=김영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