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갓난아이가 울자 입에 권총 쑤셔박았다”… 호주 女기자, 아프간 학살현장 찾아 참상 전해
입력 2012-03-29 21:45
중동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음악이 깔리면서 5∼6세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죽었어요.” “누가 그랬니.” “미국인이요.”
서방언론 기자로는 처음으로 호주 SBS 여기자 얄다 하킴이 미군 병사에 의해 17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아프가니스탄 마을 알코자이와 나지반을 찾았다. CNN을 통해 28일(현지시간) 방송된 15분가량의 르포 프로그램 ‘비통한 생존자들 아프간 학살을 전하다’에서 하킴은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참상을 생생히 전달했다.
하킴은 첫 범행이 이뤄진 알코자이의 두 집 가운데 한 집을 찾았다. 방안에는 아직 핏자국이 선명했고, 벽에는 곳곳에 총알 자국이 있었다.
한 중년남성은 “무장 군인을 보고 가족들이 비명을 질렀고, 6개월짜리 갓난아이가 울기 시작하자 군인은 권총을 꺼내 아이 입에 쑤셔박았다”라고 폭로했다.
미군 당국에 의해 격리 보호되고 있는 어린이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도 이어졌다. 미군은 어린이들이 기자를 만나 당시의 상황을 재연함으로써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며 우려했다.
“마당의 개를 먼저 쐈고 다음에 아빠를 쐈다. 엄마의 머리채를 끌어당긴 후 총을 겨눴다”고 앳된 모습의 여자아이는 악몽을 되새겼다. 이어 “한 명이 방에 들어왔고, 나머지는 마당에 전등을 들고 서있었다”고 증언했다. 형제를 잃었다는 중년남성은 “조카가 본 바로는 미군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15∼20명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모두 머리에 랜턴을 착용하고 있었다고 내게 얘기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증언처럼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범인이 1명이 아니라는 여론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CNN은 보도했다. 특히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 범행”이라고 주장했고, 사건 조사책임자인 카리미 장군도 “추측건대 1∼2명 이상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리미 장군은 “학살사건 얼마 전 미군 차량이 지뢰에 의해 전복돼 미군 1명이 다리를 잃었고, 범인은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말을 했다”면서 “과연 미군의 도움 없이 혼자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학살 현장에서 20㎞ 떨어진 아프가니스탄 제2의 도시 칸다하르에 살고 있는 한 여성과의 인터뷰로 끝을 맺었다. 이 여성은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방에서 불도 켜지 않고 차드리로 얼굴을 모두 가린 채 기자의 질문에 당시를 회상했다.
하킴의 취재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칸다하르에서 피해마을까지 가는 곳에 지뢰가 많이 매설돼 있고, 텔레반들의 공격이 수시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군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처음 취재에 나선 날도 현지에서 탈레반의 공격이 있다는 전갈이 와 포기한 후 다음 날 지역 경찰의 경호 아래 현장을 찾았다.
정진영 기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