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슬픈 영화
입력 2012-03-29 19:21
요즘은 다양한 소재로 무장한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 대작들마저 누르고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손수건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조의 최루영화가 주종을 이뤘다. 주로 ‘고무신 관객’을 겨냥한 이 영화들은 말이 좋아 멜로드라마지,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글자 그대로 tearjerker였다. 눈물(tear) 짜내기(jerk) 영화.
대표적인 게 1968년 개봉된 ‘미워도 다시 한번’과 74년 최인호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별들의 고향’이다. 신영균 문희 등이 출연한 ‘미워도…’은 유부남과 처녀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당시로서는 대박인 37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4편의 속편까지 만들어졌다. 또 ‘비정한 사회와 인간의 배신에 지쳐 술집 호스티스로 전락한 끝에 자살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인 ‘별들의 고향’ 역시 46만명이라는 당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고 80년대까지 이어진 ‘호스티스 영화’의 효시가 됐다.
하긴 당시 광고카피처럼 ‘눈물 거편(巨篇)’ 영화들에 빠진 건 한국 관객들만이 아니다. 부자 하버드대생과 백혈병에 걸린 가난한 래드클리프 여대생의 순애보를 그린 70년작 ‘러브 스토리’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극장가를 휩쓸었다.
대체 왜 사람들은 슬픈 영화, 특히 슬픈 사랑 영화에 끌리는 것일까? 그에 대한 과학적인 답이 나왔다. 슬픈 내용이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는 것. 미 오하이오 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팀이 조사한 연구결과다.
비극이 갖는 감정적 정화(淨化), 또는 정신적 승화(昇華)작용으로서 카타르시스 효과는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언급한 이래 널리 알려져왔다. 그러나 연구진의 설명은 다르다. ‘비극적 영화를 보는 부정적인 경험이 자신의 삶에서 긍정적인 측면에 주의를 돌리게 함으로써 단기적으로 행복감을 증진시킨다’는 것.
그렇다고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슬픈 영화를 보면서 자신을 주인공들과 비교해 그만큼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의 행복감은 더 증진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의 소중한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고 감사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비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행복감을 더 느꼈다고 한다.
어찌됐건 ‘슬픈 허구’를 보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걸로 좋다. 그러나 인민은 굶어죽어도 정권은 미사일 발사에 광분하는 북한의 ‘슬픈 현실’을 보면서 드는 참담함은 어쩌면 좋을까.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