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영석] 사이버 세계의 발칸화
입력 2012-03-29 19:22
“내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철저히 무시해서야…”
팟 캐스팅 혹은 인터넷 방송으로 불리는 ‘나꼼수’의 위세가 대단하다. 뜨거운 사회적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정보의 진원지로 거명된다. BBK 사건과 관련해 정봉주 전 의원이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될 때 온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더니 최근에는 이른바 김경준의 육성 녹음이라는 것을 공개하여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서울 시장후보였던 나경원 전 의원도 나꼼수의 직격탄을 맞았다. 남편인 현직 판사가 부인인 나 전 의원 관련 사건을 검찰에 기소 청탁했다고 나꼼수가 폭로한 후 사회적 논란이 일자 총선 출마를 접어야만 했다.
팟 캐스팅은 아이파드의 줄임말인 ‘팟’과 방송을 뜻하는 ‘캐스팅’이라는 말을 결합해서 만든 신조어다. 인터넷상의 블로그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블로그가 글로 쓴 문서라면 팟 캐스팅은 웹에 오디오나 비디오 컴퓨터 파일을 띄워놓은 것을 말한다.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면 그 파일에 접속하여 실시간으로, 혹은 기존에 저장되어 있던 오디오나 비디오 파일을 시청할 수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성이 높은 스마트폰의 앱을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늘면서 그 이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인터넷상의 블로그를 인쇄매체로 규정할 수 없는 것 같이 팟 캐스팅도 기존의 방송 개념에 포함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기존 언론 매체에 부과된 공정성이나 사회적 책임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팟 캐스팅인 나꼼수에서는 욕설이나 비방, 성적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꼼꼼한 확인이나 검증작업 없이 음모론적 뉘앙스와 함께 풍자 및 농담 형태로 마구 뱉어낸다. 사회적 논제 설정의 금기영역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더 큰 역기능이 있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슈든지 음모론적 시각에서 보면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인다. 더구나 사실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사건일수록 음모론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부추긴다. 특히 자신들과 반대되는 이념이나 신념을 지닌 개인이나 집단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그런 솔깃한 정보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하여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퍼진다. 확산된 정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신뢰성을 얻는다. 거기에 시민단체 같은 외곽 조직들이 합류하면 그야말로 풍문이 사회적 진실로 둔갑하고 만다.
팟 캐스팅인 나꼼수를 직접 시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장년층은 말할 것도 없고 젊은이들의 숫자도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다른 어떤 매체보다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이버 세계는 무한한 정보의 선택권을 제공하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이상적 공간으로 기대됐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 비슷한 생각, 기호, 가치, 이념 등을 지닌 사람들끼리만 똘똘 뭉치는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정서적 동일시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에 비례하여 집단 간의 반목과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다.
자신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는 진위에 관계없이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철저히 외면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보고 듣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런 것을 ‘사이버 세계의 발칸화’ 현상이라고 말한다. 구소련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발칸반도의 국가들이 많은 소국들로 분화된 후 서로 간에 극도의 적대감을 보이며 다투는 현상을 빗대어 한 말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나꼼수 신드롬’이 우려를 자아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같은 사회적 현실을 놓고 공통분모가 없이 양극단의 인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다투게 될 때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붕괴될 것이고 이는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영석 연세대 교수 언론홍보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