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민족해방파의 어제와 오늘
입력 2012-03-29 18:35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40대가 유독 정부정책에 높은 반대를 보였기 때문이다. 선거에 참패한 뒤 여권은 40대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비밀리에 아이디어를 모았으나 아직까지 시원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사회 40대들은 한·미 FTA와 같이 미국과 관련된 문제나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된 정부의 대응방향 등 대북 정책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정부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 정치학자들은 이처럼 고착화된 40대 이반의 주요 원인을 한때 대학가에서 유행한 민족해방주의(NL)에서 찾는다. 민중민주주의(PD)와 함께 1980∼90년대 대학가를 풍미했던 이 이념이 오늘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NL 전성기에 대학다닌 40대
널리 알려졌다시피 민족해방주의 노선은 계급모순보다 민족모순을 해결의 우선 순위에 놓고 남북통일을 강하게 추구한다. 나아가 북한이 8·15해방 후 일제 잔재 청산과 토지개혁을 마무리해 정통성에 있어 남한보다 앞선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남북통일을 지상과제로 설정하고 이 목표 달성에 장애가 되는 국가보안법 철폐와 미군철수 등을 줄기차게 외친다.
대학가에서 이런 움직임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가 바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로 지금의 40대들이 대학을 다닌 시기와 일치한다. 이 시절 대학가에서는 북한 바로 알기 운동, 성조기 밟기 운동 등 온갖 명분을 단 친북운동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마침 군인 출신인 노태우 정권인데다 막 출간된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이태의 ‘남부군’이 엄청난 인기를 모으기도 한 시기다.
이 두 권의 책은 당시까지 금기시되다시피 하고 적대의 대상이었던 빨치산을 일약 영웅 수준으로 취급해 종국에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공안당국은 태백산맥의 영향력이 예상외로 강하게 대학가에 파고들자 한때 이적성 여부를 검토하기까지 했다.
열병처럼 북한에 대한 환상이 대학가를 휩쓸다 마침내 문익환, 임수경의 밀입북이 있게 되고 운동권 내부에서는 치열한 사투(사상투쟁)가 벌어지게 된다. 이 가운데 대세를 장악한 그룹이 NL의 변종인 주사파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숭배하는 그룹이다.
주목할 대목은 대학 졸업 이후의 진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NL계열이 PD계열보다 융통성있는 선택을 하도록해 오늘날 진보·좌파세력의 중추로 자라났다는 사실이다. 즉, 노동자에 의한 해방을 추구하는 PD계열은 주로 대도시 인근 공단으로 잠입해 현장에서 노동투쟁을 한 반면 NL계열은 졸업 후 적성에 맞게 사회 각 분야에 골고루 진출해 이념에 맞는 투쟁을 하라고 권고했다.
이 결과 졸업 후 부담이 훨씬 적은 NL계로 대학생들이 모이게 되고 이들은 과거 노동현장으로 달려가 노동자와 같이 생활한 선배운동권과 달리 사시 등 국가시험이나 기자, 교사, 공인회계사 등 다양한 방면으로 퍼졌다. NL세력이 전국적으로 결집한 조직이 바로 1991년 조직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으로 이후 운동권의 대세를 장악하고 종국에는 진보정당의 헤게모니를 잡는 데 성공했다.
자기고백 할 시기 됐다
최근 통합진보당 내 핵심세력으로 부상한 특정정파도 전국연합에 모태를 두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NL이 진보정당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대중성을 강조한 노선의 승리다. 문제는 이들이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참여하는 국회의원이 될 경우에는 자기고백이 한번쯤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북한을 동경하고 김일성을 사모하는지 이제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