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아브라함의 부활 신앙
입력 2012-03-29 18:21
히브리서 11장 17∼19절
‘믿음’은 생명적 유기체처럼 하나님 말씀이라는 자양분이 있으면 나고 자라는 속성이 있습니다(롬 10:17). 아브라함이 75세에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처음 듣고 좇아갔던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가 없던 아브람에게 자녀를 주시되 큰 민족을 이룰만한 자녀를 주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의 아브람은 재산도 많았으며 미모를 가진 부인 사래에게서 ‘주인님’이라는 절대 순복의 사랑과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브람의 사병 318명은 아브람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성스런 종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브람도 자신이 원하던 자녀가 없었기에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75세나 된 아브람이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갈 바를 모르면서도 고향을 떠난다고 했을 때 아마 그의 고향 친구들은 아브람에게 “자네 미쳤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고향을 떠난다고?”하며 만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신앙 때문에 문화와 행복의 도시 갈대아 우르를 떠나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신앙 때문에 광야를 선택했습니다. 순종을 위해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믿음이란 갈 곳을 몰라도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르는 것이며. 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하나님을 바라고 신뢰함으로써 시작됩니다(히 11:1). 그리고 믿음은 여러가지 역경과 고통을 통해 더 큰 바람과 소망으로 시나브로 자라납니다(롬 5:3∼4). 처음에는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다른 남자에게 안겨 줄 만큼 연약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제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그의 목에 칼을 내리치는 절대적 믿음으로 자라게 됩니다. 믿음은 자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드릴지라도 다시 되돌려주실 그 하나님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며 그것이 주님이 요구하는 믿음의 수준인 것입니다(롬 4:1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이신다고 할지라도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대속의 양을 준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이삭을 드렸습니다. 칼뱅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 그대로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줄 믿는 믿음이 모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제물로 바쳐진 사건이나 십자가의 사건은, 죽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이 우리의 영원한 죽음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그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오를 때 이미 그의 신앙은 죽음을 극복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막 12:27).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수준이 있다면, 우리는 벌써 세상을 초월하고, 죽음을 초월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삼켜버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생명을 오늘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임헌만 목사 행복드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