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과 왕릉, 강과 전설… 백제와 함께 걷는다

입력 2012-03-28 19:42


공주 ‘고마나루 명승길’ 14㎞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던 충남 공주에 최근 14㎞ 길이의 ‘고마나루 명승길’이 선보였다. 고마나루는 웅진(熊津)을 뜻하는 공주의 옛 지명으로 ‘고마’는 ‘곰’의 옛말. 공산성과 무령왕릉을 비롯해 공주보 등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주의 속살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명승길의 출발점은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 공산성.

공주 한복판에 우뚝 솟은 공산성은 무령왕의 아들인 성왕이 538년에 부여 사비성으로 천도할 때까지 64년 동안 왕도를 지킨 천혜의 요새. 금강과 이웃한 표고 110m 높이의 구릉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성곽의 유려한 곡선이 백제의 미를 상징한다.

공산성 서쪽의 금서루는 1500여년 전의 백제시대로 들어가는 ‘시간의 문’. 매년 4∼10월 주말에는 이곳에서 웅진성 수문병 교대식 행사가 열려 현장감을 더한다. 노란색 깃발이 나부끼는 성곽의 둘레는 2660m. 고목이 뿌리를 내린 성곽은 적당한 굴곡과 높낮이로 인해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백제의 숨결이 생생한 공산성을 한바퀴 돌아 나온 명승길은 금강을 가로지르는 금강교를 건넌다. 1932년 완공된 금강교는 압록강철교, 한강철교, 낙동강철교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던 4대 철교 중 하나. 금강에 색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공산성과 어우러진 금강교의 야경이 황홀하다.

금강을 건넌 명승길은 정안천생태공원으로 산책을 떠난다. 10만평 규모의 생태공원은 봄부터 가을까지 실개천을 따라 온갖 야생화들이 피고 지는 꽃밭.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공주시 공무원 가족들이 직접 길을 내고 꽃씨를 뿌렸다.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갔다 다시 하류로 내려온 명승길은 봄바람이 싱그러운 금강 둔치를 걸어 제비꼬리를 닮았다는 연미산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연미산의 기슭에 위치한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은 국내외 작가 50여명이 돌, 나무, 흙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작품을 전시한 공간. 흙으로 만든 토끼 조각들이 진짜 토끼처럼 생생한 등산로를 30분쯤 오르면 금강과 공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나온다.

다시 강변으로 돌아온 명승길은 인간과 암곰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는 곰나루를 지나 봉황의 형상을 모티브로 건설된 공주보를 건넌다. 280m 길이의 공주보는 무령왕을 상징하는 봉황이 금강을 지키는 형상. 봉황의 머리와 날개, 그리고 여의주처럼 생긴 조형물은 조명으로 단장한 밤에 더욱 환상적이다.

공주보를 건너 시내 쪽으로 걸으면 한옥 10여 채가 처마를 맞댄 공주한옥마을이 나온다. 공주시가 전통 한옥의 구들장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6동 37실 규모의 한옥은 직접 장작불을 피워 난방을 한다. 저잣거리에는 백제옷 입어보기 등의 체험이 가능한 백제방(041-840-8900)이 위치한다. 이밖에도 한옥마을에는 한정식 전문점인 금강관(041-857-6700)과 60년 전통의 공주국밥으로 유명한 새이학가든(041-855-7080) 분점이 위치해 백제로 시간여행을 떠난 여행객들의 시장기를 달래준다.

무령왕릉에서 쏟아져 나온 금제관식 등 108종 29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한 국립공주박물관과 한옥마을은 지근거리. 박물관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뒷산으로 올라가면 정지산 유적과 무령왕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삼거리에서 솔향기 그윽한 왼쪽 숲길을 10분쯤 걸어가면 무령왕과 왕비가 죽은 후 27개월 동안 모셨다는 정지산 유적을 만나는데 금강을 비롯해 공산성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다시 숲길로 돌아 나와 곧장 걸어가면 무령왕릉이 자리한 송산리 고분군이다. 발굴 당시 전 세계 고고학계를 흥분하게 했던 무령왕릉은 왕이 살던 공산성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1971년 송산리 고분군의 6호분 배수시설 공사 중에 도굴된 흔적이 없는 처녀분에서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라는 지석이 발견되면서 백제의 화려한 문화가 시공을 뛰어넘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동쪽으로 공산성이 버티고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명당에 위치한 무령왕릉 등 7기의 고분은 1998년 영구보존을 위해 철문으로 봉해 놓았다. 대신 입구에 고분군 모형관을 만들어 무령왕릉과 5호분을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무령왕릉을 출발한 고마나루 명승길은 1800년대에 천주교도 300여명이 순교를 당한 황새바위 성지와 전통시장인 산성시장을 거쳐 다시 공산성으로 돌아온다. 1500년이라는 시공을 넘나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4시간30분 정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덤에서 깨어난 백제의 숨결이 오롯이 느껴진다.

공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