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박근혜, 호남을 포기할 건가

입력 2012-03-28 18:23


“30곳 가운데 13곳을 무공천하고 지원유세도 찬밥… 유권자들 섭섭하지 않을까”

19대 총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공식적인 선거운동은 29일 0시부터 시작됐지만 실제로는 선관위에 후보등록을 한 지난주부터 본격화됐다. 주요 정당 지도부가 전국을 누비며 바람몰이를 하고 있고, 246개 선거구에 출마한 927명의 후보들은 유권자를 찾아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갖가지 선거구호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한데 웬일일까. 호남지역의 새누리당 캠프는 조용하기만 하다. 새누리당의 현지 선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정현 의원이 출마한 광주 서을을 제외하곤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다고 한다. 민주통합당의 기가 워낙 세서 그렇다지만 새누리당 후보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총선은 처음이란 얘기가 들린다.

이유인즉 공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란다. 새누리당은 호남지역 30개 선거구 중 무려 13곳에 공천을 하지 않았다. 특히 호남의 중심도시인 광주의 경우 8곳 중 2곳에만 후보를 냈다. 공천 신청자 중 적임자가 없어서 그렇다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절반 가까이 공천을 하지 않은 것은 명색이 집권당으로서 직무유기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호남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박탈한 셈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공천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공천은 정치쇄신의 핵심”이라며 “국민의 뜻과 눈높이에 철저히 따르는 공천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호남지역 공천만 놓고 보면 국민 뜻을 따르기는커녕 철저히 무시한 꼴이다.

우리 선거사를 보자. 새누리당은 집권 중일 때 호남공천을 성심성의껏 했다.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던 16대(2000년)와 17대(2004년) 총선 때는 일부지역에 공천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러나 13대(1988년) 총선에서 전패한 후 희망이 보이지 않던 14대(1992년)와 15대(1996년) 총선 때 단 한 곳도 빼놓지 않고 공천을 했다. 그 결과 14대 때 2명(황인성 양창식), 15대 때 1명(강현욱)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역시 기대 난망이던 18대(2008년) 총선 때도 모든 지역에 후보를 냈다. 비록 1명도 당선시키지는 못했지만 5명이나 두 자릿수 득표를 해 체면치레를 했다.

새누리당과 박 위원장이 호남에 애정이 있다면 공천 초기부터 무게와 신망을 갖춘 인물을 영입하는 데 각별히 신경을 썼어야 했다. 이정현 의원 정도의 경쟁력 있는 후보를 네댓 명만 공천했다면 선거 분위기가 확 달라졌을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공천 과정에서 당이 호남을 위해 심혈을 쏟은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이는 정권교체를 부르짖는 야권이 불모지 영남에 기울인 노력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등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후보단일화를 이뤄 67곳 전 선거구에 공천을 했다. 민주당은 최소 5명 이상 당선시켜 영남을 정권교체의 진원지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공천 후 지원 유세도 호남은 찬밥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주 이후 텃밭인 영남 5개 시·도(대구 부산 울산 경북 경남)를 모두 방문했다. 부산에는 최근 3번이나 다녀왔다. 그런데 호남은 다음달 초 4·3사건 64주년 기념식 참석차 제주도를 방문했다가 귀경길에 들를 계획이라고 한다. 호남 후보들이 꽤나 섭섭하게 생겼다.

박 위원장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다. 영남권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기에 혹여 호남에 대한 관심이 적은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하고는 대통령 되기가 쉽지 않다는 통계를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는 호남에서 각각 3.3%, 4.8%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때 8.9%나 얻었다. 호남 민심이 수도권 표심의 상당부분을 견인한다고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큰 통계다.

이런 손익을 따지기 전에 대통령 후보에겐 지역, 이념 등과 관련한 국민통합의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박 위원장이 호남 유권자들과도 활짝 웃으며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