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직간
입력 2012-03-28 18:23
초 문왕이 여 땅에서 생산되는 누렁이 사냥개를 데리고 숲으로 사냥을 가 석 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와 즐기는 일에 빠져 꼬박 한 해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기도 했다.
이 때 신하인 태보 신은 선대 왕의 유훈이라며 임금에게 회초리를 맞으라고 간한 뒤 직접 모형 가지 쉰 개를 한데 묶어 임금의 등에 얹었다. 차마 회초리를 댈 수가 없어 그렇게 한 것이지만 왕으로선 수치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문왕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자 태보 신은 이번에는 자신의 불충이 크다며 연못가를 배회하며 죽여 달라고 왕에게 호소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문왕은 사냥개를 죽이고 정사에 집중해 주변 서른아홉 국가를 합병하는 위업을 이뤘다.
온갖 지혜를 모아놓은 중국의 고전 ‘여씨춘추’ 육론(六論)가운데 직간(直諫)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편에는 태보 신 이야기 외에도 제나라 환공, 포숙, 관중, 영척이 연회를 벌이면서 신하인 포숙이 주군인 환공에게 예전 고단했던 망명생활을 잊지 말라고 간하자 환공이 포숙에게 두 번 절하고 이를 가슴에 새겼다는 일화를 비롯하여 숱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구태여 고전을 인용할 것도 없이 신하가 임금에게, 부하가 상사에게, 후배가 선배에게 잘못을 바로 이야기해 이를 바로잡는 것은 아랫사람의 도리다. 마찬가지로 윗사람도 아랫사람의 직언을 새겨들어 행동을 고친다면 성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그래서 예부터 명군 옆에는 현신이 있고 출세한 남편 곁에는 현부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이 같은 간언을 충실히 새겨들어 행동준칙으로 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권부의 깊은 세계에 빠지면 이 같은 충언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취임 초 하늘을 찌를듯하던 인기를 뒤로하고 친인척 비리 등으로 우울한 말년을 보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많은 참모 가운데 어찌 직간을 한 사람이 없었을까 마는 키를 쥐고 있는 대통령이 이를 새겨듣지 않아 불행을 자초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책이 완성되자 지은이인 여불위가 함양의 시문(市門)에 “이 책의 내용을 한 자라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고 했다”는 여씨춘추에는 이런 말도 있다. 소인에게는 회초리가 아프고, 군자에게는 회초리가 수치스럽다고. 군자의 길을 걸을 것인지 소인의 길을 갈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