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송세영] 블랙리스트 제도 정착돼야

입력 2012-03-28 18:23


5월 1일부터 휴대전화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된다. 도난이나 분실 등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만 아니라면 어떤 단말기로든 자유롭게 통신사를 선택해서 가입할 수 있다. 이름은 생소해보이지만 사실 소비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제도다. 대부분 통신서비스의 경우 PC나 전화기 등 단말기는 유통매장에서 구입하고 서비스는 통신사에 신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현재 휴대전화의 유통은 특이하게도 통신사에 등록된 단말기가 아니면 이용이 불가능한 화이트리스트 방식을 따르고 있다. 통신사 대리점이나 판매점을 통해 통신서비스에 가입하면서 단말기도 할부 구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들 단말기는 제조사들이 통신사의 요구에 맞춰 최적화한 뒤 납품한 제품들로, 같은 브랜드의 단말기라도 통신사에 따라 디자인이나 내장 어플리케이션이 달라진다. 화이트리스트 제도에서는 통신사들이 휴대전화 유통을 주도하게 된다.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되면 휴대전화만 따로 구입한 뒤 희망하는 통신사에 가입할 수 있다. 통신사와 독립된 유통채널이 활성화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 제조사와 통신사, 대리점, 판매점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유통단계가 축소되고 채널도 다변화될 수 있다. 유통채널간 경쟁이 촉발되므로 가격인하도 기대된다. 약정할인과 단말기할인, 통신사 및 제조사 장려금 등이 결합돼 있는 복잡한 가격구조를 간소화해 소비자들의 편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복마전처럼 얽힌 현재 휴대전화 유통구조 때문에 시장에는 공짜 아닌 ‘공짜폰’이 넘쳐나고, 소비자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덤터기를 쓰곤 한다. 통신사와 제조사 장려금은 유통점이 모두 챙기고 소비자에게는 비싼 출고가 그대로 판매하는 것을 업계에서는 속어로 ‘풀빵 때린다’고 한다. ‘풀빵’을 맞으면 시중가보다 50만∼60만원 비싸게 산 셈인데도 소비자들은 대부분 눈치를 채지 못한다. 이런 휴대전화를 ‘퇴근폰’이라고도 하는데 한 대만 팔면 가게 문 닫고 퇴근해도 될 정도로 남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통신사들은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페어프라이스 같은 제도를 도입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본적인 가격구조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돼도 휴대전화 시장이 단숨에 급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하다. 고가격 고성능 단말기일수록 일시불로 구입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는 출고가가 99만9000원이다. 블랙리스트제도로 가격이 다소 낮아진다 해도 노트북PC나 LED TV 1대 값과 맞먹는 대금을 일시에 지불하기는 쉽지 않다. 당분간은 통신사를 통해 할부로 구매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제조사가 유통시장의 큰 손이자 최대 고객인 통신사와 단말기 유통을 놓고 경쟁을 펼칠 가능성도 크지 않다. 통신사에는 최신 고사양 단말기를 납품하고 일반 유통채널에는 보급형 저사양 단말기를 내놓을 공산이 크다.

통신사의 막강한 구매력을 감안하면 대형할인점이나 편의점 같은 대기업 유통채널도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하기 어렵다. 통신사를 통해 유통되는 단말기들에 네비게이션 같은 해당 통신사만의 특화서비스가 포함돼 있다는 점도 통신사 유통 단말기의 강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블랙리스트 제도가 갖는 장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 시장여건을 고려할 때 자칫하면 출범과 동시에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있다. 공수표로 끝난 통신비 절감 정책들의 재판이 되지 않으려면 방송통신위원회가 블랙리스트 제도 활성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송세영 사회부 차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