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박지연, 여자바둑 중심에

입력 2012-03-28 19:42


1999년 루이나이웨이 9단이 한국에 들어온 뒤 루이·박지은·조혜연은 한국 여자바둑계의 트로이카로 불렸다. 가끔 한두 기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반짝 이름을 알린 기사들도 있었지만 철옹성 같은 그 자리는 10년이 지나도 잘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루이 9단이 중국으로 돌아가자 앞으로 여자바둑계의 판도가 어떻게 달라질까 예의주시하는 상황에서 박지연 2단이 그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991년생의 박지연은 여자연구생 서열 1위로 2006년 프로가 됐다. 2007년 제1회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에서 첫 주자로 출전해 3연승을 거두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신예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누구든 주눅 들지 않는 당찬 성격으로 선배기사들을 제치고 서서히 중심으로 올라서더니 그해 세계마인드스포츠게임 한국대표로 선발돼 은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2009년에 박지연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천재형 기사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노력하며 전진하던 발걸음이 주춤했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 2010년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여류기성전에서는 처음으로 결승무대까지 오르지만 김윤영 3단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남자들과 동등하게 겨루는 세계대회인 BC카드배에서는 64강까지 올랐다. 삼성화재배에서는 여자선발전에서 한국과 중국 선수들을 물리치며 32강 본선에 합류, 중국의 기대주 퉈자시 3단을 물리치며 한국여자기사 사상 최초로 세계대회 16강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박지연은 그해 여자기사로는 처음으로 바둑대상 신예기사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올해 여류국수전에서 김윤영과 김혜민 6단을 차례로 이기며 두 번째 결승무대에 올랐다. 상대는 여자랭킹 1위 박지은 9단. 여자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큰 산이다. 3번기로 펼쳐진 결승 1국에서는 치열한 혈전 끝에 박지은의 승리였다. 이어진 2국은 장장 8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행운의 여신이 박지연의 손을 들어줬다. 반집승이었다. 그리고 지난 21일 열린 최종국에서는 불리한 바둑을 긴 승부로 이끌어가며 역전을 시켜 생애 첫 우승컵을 안았다.

박지연은 “항상 바라왔던 타이틀 획득인데 실제로 일어나니 믿기지 않는다. 힘든 대국이 많을수록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뒀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인하면서도 끈질긴 기풍을 가진 그녀는 성격 또한 당차고 씩씩하다. 늘 바둑계의 중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발 벗고 앞장선다.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보는 혜안이 있으며, 냉철하고 강한 승부사의 이면에는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사랑스러움이 담겨 있다. 그녀의 첫 우승 행보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주기 바란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