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북한 주민 기대수명

입력 2012-03-27 18:22

북한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처음 본 것은 1990년쯤 판문점에서였다. 남북 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온 이들이었다. 자신을 북한 언론인이라고 하면서 접근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남한 정보당국 관계자는 “그들 중 상당수는 기관원이기 때문에 대화할 때 조심하라”고 귀띔했다. 북한에서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신수가 멀끔하기까지 했다.

두 번째 북한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본 것은 90년대 말 금강산관광 길에 올랐을 때다. 금강산관광 지역에 숙박시설이 없어서 장전항에 정박한 유람선에서 소형 선박을 갈아타고 육지로 이동해 관광하고 유람선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 여정이었다. 북한 출입국을 관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건장했다. 이들만 봐서는 북한이 끼닛거리가 없어 고생한다는 걸 실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금강산을 둘러보면서 만난 북한군 보초들은 대부분 키와 몸집이 작았다. 이들을 보면 북한 식량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북한을 방문한 국제구호단체 관계자들은 북한의 식량난이 아주 심각하다고 말한다. 평양 등 대도시에 살면서 식량배급을 제대로 받는 사람들을 제외한 대다수 주민들의 생활고는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다는 것이다. 아사자가 최대 300만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 0∼9세 어린이 220만명이 영양결핍으로 성장장애를 겪고 있으며, 이 가운데 1만8000명은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보고서가 최근 발표됐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이 북한 중앙통계청과 함께 2004년과 2009년 북한에서 실시한 ‘영양 평가조사’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이기 때문에 비교적 소상하게 북한 실상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식량난으로 인한 영양결핍, 열악한 의료 수준, 중노동 등은 곧바로 기대수명(출생 직후부터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황나미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남북한 건강수준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69.3세(남 65.6세, 여 72.7세)에 불과했다. 북한이 2008년 실시한 인구센서스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이 기대수명은 남한의 1985년도 수준이다. 2008년 남한의 평균 기대수명은 80.1세(남 76.5세, 여 83.3세)로 북한보다 10.8세 길다.

주민들의 생활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군비확충과 무기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북한 정권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