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태정] “너는 꽃이다”

입력 2012-03-27 18:25


“처음부터 할 순 없는 거야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내일/ 기대만큼 두려운 미래지만/ 너와 함께 달려가는 거야/ 힘이 들면 그대로 멈춰 눈물 흘려도 좋아/ 이제 시작이란 마음만은 잊지 마/ 내 전부를 거는 거야 모든 순간을 위해/ 넌 알잖니 우리 삶엔 연습이란 없음을/ 마지막에 비로소 나 웃는 그날까지/ 포기는 안 해 내겐 꿈이 있잖아.”

며칠 전 한 방송사가 제작한 음악프로에서 1994년에 방영된 청춘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OST로 마무리하는 무대를 봤다. 18년이나 지난 노래임에도 방청객들이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며 신나게 혹은 비장한 모습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곱씹어보지 않아도 저절로 와 닿는 가사여서 새삼 가슴이 뭉클했다. 어느새 나도 민중가요를 부르는 뜨거운 동지처럼 씩씩하게 함께 따라 불렀다.

그러나 젊음은 아름답다고 해도 첫 걸음에 대한 두려움과 방황은 청춘에게 주어진 핸디캡임이 분명하다. “이게 맞는 길인지 모르겠어요. 앞이 보이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나 역시 인생의 문제지에서 동그라미 아닌 엑스 표시를 더 많이 보았으니까. 겪어보지 못한 것에, 또는 자기가 모르는 내용을 주고 답을 고르게 하면 누구나 쉽게 틀린다. 그뿐인가.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에 똑같은 문제를 받는다면 그때마다 답이 다를 수도 있으리라.

이렇게 현실에 꺾여 좌절하다 보면 “나는 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신통찮을 때, 나의 진심이 배반당할 때, 아무리 노력해도 성취되지 않을 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아, 나는 꽃을 피우지 못하는 양치식물이 아닐까?”라며 기어이 자신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버리고야 마는 친구들을 종종 본다.

여기서 ‘마지막 승부’의 메시지가 다시 절절하게 들려온다. 처음부터 내 것은 없는 것이고, 살아가며 얻기도 잃기도 하는 것이며,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할 일, 방황했던 날도 많았지만, 꿈이 있으니 마지막에 웃는 그날까지 절대로 포기하거나 좌절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답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막 꽃망울을 팡 터뜨린 꽃이 되지는 못해도, 기다림 속의 꽃이 분명하다고. 꽃은 꽃이로되 제각기 피는 시기가 다를 뿐이니, 아직 꽃을 피우지 못했어도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꽃으로 환하게 피어날 것임을 마지막까지 믿어 의심치 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친구 혹은 후원자의 뜻을 지닌 단어 ‘friend’ 속의 또 다른 단어는 ‘end(끝)’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세상 마지막 날까지 함께 걸어갈 사람이라는 것이 ‘friend’의 두 번째 정의라고 한다. 사람들끼리 서로가 꽃임을 믿어주고 이끌어주며, 고통은 덜어주고 사랑은 보태어 소중한 사랑을 잃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친구와 후배들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분명, 너는 눈부시게 빛날 수밖에 없는 꽃이야!”

안태정(문화역서울284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