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아이, 성장평가 한번 받아보세요”… 걱정되는 ‘저신장증’ 원인·치료법
입력 2012-03-26 19:22
김영미(38·가명)씨는 며칠 전 딸아이가 밤에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올봄 초등학교 2학년에 진학한 딸은 겨울방학 동안 부쩍 자란 같은 반 친구에게 밀려 1번이 된 것이 불만이었다. 김씨는 딸아이의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기로 했다.
이정호(45·가명)씨도 아들의 키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최근 병원에서 성장판이 닫혀 앞으로 키가 거의 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에서 키가 비교적 큰 편이었는데 160㎝를 넘긴 후로는 성장이 멈춘 듯했다. 이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받게 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꾸밈없이 밝기만 한 동화 속 아이들과 달리 현실 속 ‘엄지공주’와 ‘피터팬’은 작은 키가 고민이다. 요즘 신세대 아이들은 180㎝ 안팎의 ‘큰 키’를 갖는 게 소망이다. 이런 바람을 현실화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의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성장 평가를 거쳐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유전, 호르몬·염색체 이상, 만성질환 등이 원인=일반적으로 저신장증은 성별과 연령이 같은 100명 가운데 3번째 이내로 키가 작고, 1년간 성장 속도가 4㎝ 미만에 그치는 경우를 말한다. 저신장증 아이는 보통 반에서 키 순서로 1번을 도맡아 하는 예가 많다. 해가 갈수록 또래 아이들과의 키 차이도 점점 더 벌어진다.
저신장증은 가족성 저신장증, 즉 부모의 키가 작은 게 가장 흔한 유형이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은 큰데, 다른 한 사람이 작을 때도 작은 쪽을 닮을 수 있다. 이 경우 성장판 검사를 하면 실제 나이와 뼈 나이가 비슷하게 진행된 상태에서 비교적 정상 성장 속도를 보이는 것으로 결과가 나온다. 반면 비(非)가족성 저신장증, 즉 체질적으로 늦게 크는 아이는 성장 속도가 정상인데도 사춘기 발달이 또래보다 늦거나 실제 나이보다 뼈 나이가 어린 경우가 많다.
저신장증은 성장호르몬이나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할 때도 나타날 수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권아름 교수는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하면 몸무게가 늘고 추위를 많이 타며 쉽게 피로를 느끼는 증상을 보인다”며 “이때는 환자에게 갑상선호르몬을 보충해주면 증상이 호전되고 정상적인 키 성장 속도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호르몬이 부족한 아이는 얼굴이 인형처럼 둥글고 배가 나오며 ‘고추’ 크기도 작은 게 특징이다. 이밖에 터너증후군, 러셀-실버증후군처럼 염색체에 이상이 있거나 임신 시 자궁 내 발육부전을 겪은 아이들에게도 저신장증이 생길 수 있다. 만성 신부전, 선천성 심장병, 염증성 장질환 등이 있어도 2차적으로 키가 잘 자라지 않게 된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성장판 열린 어린이만 유용=저신장 치료는 원인질환이 분명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뉜다. 정상 성장을 방해하는 병이 있을 때는 원인질환을 우선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특별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엔 성장판이 닫혔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만약 검사결과 성장판이 닫힌 것으로 판정되면 성장호르몬 치료는 소용이 없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아직 성장판이 열려 있고, 성인이 됐을 때 최종 키가 작을 것으로 예측될 때 적용된다. 성년의 최종 키는 성장판 및 호르몬 검사를 통해 성장호르몬 분비 정도와 성장 속도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예측이 가능하다.
치료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작할수록 효과가 좋다. 대개 2∼4년 정도 주사할 경우 성인이 됐을 때 예측되는 키를 6∼8㎝ 정도 더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아이를 올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부모는 한 번쯤 소아청소년과를 방문, 아이가 제대로 크고 있는지 성장 평가를 해 보는 것이 좋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병원에서 의사가 처방해준 지침대로 매일 집에서 잠자기 1∼2시간 전에 부모나 본인이 팔, 배, 엉덩이, 허벅지 등에 주사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작은 주사기, 펜, 기계 형태 등 종류도 다양하고, 번거롭지 않게 일주일에 한 번만 투여하는 제품도 나와 있다.
성장호르몬결핍증, 터너증후군, 만성 신부전 등 원인질환이 분명할 때는 건강보험 급여혜택도 볼 수 있다. 권 교수는 “성장호르몬 치료의 경우 주사 바늘이 가늘어서 많이 아프지 않고 운동이나 목욕 등 일상생활을 하는데 제한이 없으며 열이 나거나 감기약을 먹는 경우에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