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지도력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입력 2012-03-26 17:53
조선의 역사는 끊임없는 국론 분열의 역사였다. 특별히 선조 때부터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파 싸움이 시작되었고 나중엔 노론과 소론,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어 불필요한 내부소모전으로 국력을 탕진하였다. 영조가 탕평책을 쓴다고 하였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노론의 세력은 더 커져만 갔다. 정조도 국론을 하나로 모으려 했지만 이미 너무 커진 노론 세력의 저항에 밀려 또 다시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안동 김씨가 세도정치를 시작하면서 조선의 역사는 비참한 말로를 향하여 치달렸다. 조정의 관료들이 서로 권력 싸움만 하고 있으니 어떻게 왕의 지도력이 있었겠는가.
특별히 안동 김씨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더 강화하기 위하여 왕족들의 씨를 말려 버렸다. 죄 없는 사람을 역적으로 만들어 귀향을 보내거나 독살했다. 그런데 헌종은 아들 없이 죽었다. 하지만 새로운 왕을 세우려고 해도 도성 안에 왕족이 없는 것이 아닌가. 왕족이 대부분 역적이 되었거나 죽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강화 도령 이원범을 데려다가 왕으로 세웠다. 그는 강화도에서 사냥이나 하고 짚신이나 만들며 살았던 사람으로,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궁녀들과 희희낙락거리며 향락에 빠져 살다가 그렇게 죽었다.
이처럼 지도자의 지도력을 무너뜨렸을 때 조선의 역사는 기울고 결국에는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비참한 역사의 종말을 맞았다. 나는 ‘네 어미는 조선 삐였다’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를 보면 수많은 조선의 처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 고위 장교들에게 윤간 당한다. 그 후에 다시 모든 병사들의 성노리개가 되어 처참하게 짓밟힌다. 한 처녀는 끝까지 윤간을 거부하다가 결국 나중에 사형을 당한다. 어떤 여인은 유서를 써 놓고 자살을 한다. “나는 오늘처럼 우리 조상을 증오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나라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정치를 하고 운영하였으면 조국의 딸들이 일본의 성노리개로 끌려가 이토록 비참한 수치와 죽음을 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는 여인이 유서를 읽는 부분에서 울어 버리고 말았다. 영화에서 조선 여자들이 거의 전라의 모습으로 짓밟히는 장면을 보고도 나는 0.01%도 음란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한 남자로서, 국민으로서 너무 치욕적이고 뜨거운 울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민족이 이런 치욕의 역사를 겪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지도력의 부재 때문이다. 지도력이 없으니까 조선의 미래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그대는 미래를 꿈꾸고 있는가. 결코 지도자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 한국교회는 더 그렇다. 지도자를 무너뜨리면 한국교회의 미래도 없다. 다시 지도자를 존중하고 세워주는 마인드로 전환하자. 지도력의 귀함을 아는 풍토를 조성하자. 진정한 지도력의 회복이 있을 때 한국교회도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와 찬란한 미래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