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노량진 수산시장

입력 2012-03-26 18:22

“오전 9시에 떠나 인천으로 향하는데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뢰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첫 철도개통을 다룬 독립신문 1899년 9월19일자 기사 일부다. 제물포까지 연결된 경인선의 시발점이 노량진이다.

당시 노량진은 한강 이남과 건너편 용산을 잇는 노들나루였다. 한자로 나루 진(津)을 쓴다. 또한 상류의 한강진, 하류의 양화진과 함께 군사요충지였다. 이 때는 지킬 진(鎭)이다. 숙종 때는 진선(鎭船) 15척이 상주했다고 하니 궁궐로 가는 진상품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후 경기도 시흥군 북면으로 있다가 1936년 서울로 편입됐고, 1917년에 한강 인도교가 생기면서 주거지로 부상했다.

지금은 학원가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노량진의 중심은 수산시장이다. 1927년 서울역 옆 의주로에 있던 경성수산주식회사가 모태이니 85년의 역사를 지닌다. 1971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차관으로 노량진에 새 건물을 지어 한국냉장이 운영하다가 2002년 수협에 인수돼 오늘에 이른다. 수도권 수산물의 절반이 거래되고, 하루 3만 명의 고객이 찾는 곳이다.

미술평론가 김진송씨는 저서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에서 이렇게 회억한다. “질퍽한 콘크리트 바닥, 나뒹구는 스티로폼 상자들과 종잇조각, 끊임없이 오가는 손수레, 일꾼들의 번들거리는 앞치마, 똑같은 크기의 간판들… 상인들은 호객의 손짓을 건네고, 생선을 다듬어 비닐봉지에 담고,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어준다. 그들의 하루는 반복적인 리듬의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노량진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수산시장의 비즈니스에 대해서도 직관력을 보여준다. “활어와 건어물, 양념집으로 구획된 시장에서 고객의 방문은 순전히 우연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도 상품의 우열이나 광고 덕택에 손님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수산시장에서의 사업은 방문객을 가게 수로 나눈 확률이다.”

이 시장이 지상 8층짜리 현대식 건물로 바뀐다고 한다. 주제는 ‘바다를 담은 공원’으로 삼았다. 개방형 공간에서 장사하던 가게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설계다. 다만 조감도를 보니 물고기의 비늘같은 디자인으로 치장할 뿐 역사성과 장소성을 배려한 콘셉트는 찾기 어렵다. 어설픈 현대화 사업으로 또 하나의 명소를 잃는 것은 아닌지.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