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정권 심판론’이 수그러든 까닭
입력 2012-03-26 18:12
불과 5개월 전이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선거를 즈음해 정당정치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기존 정치에 식상한 일반 시민들이 거대한 태풍을 일으켰다. 옛 한나라당은 물론 옛 민주당은 뿌리째 흔들렸다. ‘정당은 민심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임을 새삼 절감한 때였다.
야당보다 여당이 훨씬 위태로웠다. 임기 내리막길에 접어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데다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가 터져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서관 등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19일 박근혜 비상대책위 체제가 출범해 당명까지 바꿨으나 악재는 이어졌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은 지금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쯤 되니 ‘MB정권 심판론’이 힘을 받아 4·11 총선은 해보나마나 야당의 압도적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 1월15일 민주통합당으로 새 출발한 야당은 ‘여자 이명박(MB) 정권’이란 표현을 써가며 박근혜 체제의 새누리당과 MB정부를 싸잡아 공격하고 있으나 왠지 메아리가 크지 않다. 민주당에게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주었던 새누리당이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새누리당이 잘해서라고 답하긴 힘들 듯하다. 최근 사퇴한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의 지적대로 새누리당 총선 후보자들을 보면 ‘MB정권 심판론’에 끌려갈 소지가 있다. 주목할만한 ‘새 피’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과감한 개혁이나 변신보다 화합과 후보 개개인의 당선 가능성을 중시한 탓이다.
이유는 민주당에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민주당의 ‘헛발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천만 받으면 본선에서 승리할 확률이 컸던 탓인지 친노무현 세력과 구 민주계, 시민사회세력이 ‘공천혈투’를 벌이면서 크고 작은 잡음들이 이어졌다. 낙천된 구 민주계 인사들은 ‘친노의 향연’이라고 일갈한 뒤 무더기로 당을 떠났다. 공천 기준으로 정체성이 강조되면서 합리적인 인사들이 탈락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타결된 야권연대도 아직까지는 민주당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다. 오히려 통합진보당과 같은 목소리를 내느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적극 밀어붙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에 반대하고, 친북 성향의 ‘경기동부연합’이 진보당 주도세력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이를 색깔론이라며 진보당을 옹호하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여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민주당 달라진 모습 보여줘야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사람들을 숙청하고, 노 전 대통령 철학을 부정하는 정당이요, 선거 승리에 눈이 멀어 진보당의 좌파 노선을 따라하는 정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됐다. 나아가 자신들이 총선 이슈로 내세운 ‘MB정권 심판론’의 추동력을 반감시키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의 ‘친노 심판론’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어가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제1당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보다 MB정부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표일까지 보름 이상 남았다. 이 기간 판세가 요동칠 가능성은 상존한다. 민주당이 대선 전초전인 총선에서 완승을 거두고 싶다면 중도층을 포용하는 정책을 내놓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