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흑인소년 피살’ 대규모 항의시위… “체포도 기소도 않고 명백한 인종차별”

입력 2012-03-25 20:13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 자경단의 총에 맞아 숨진 소년의 죽음을 애도하고, 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시위가 미국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와 시카고, 템파, 내슈빌 등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이 살해될 당시 입고 있던 것과 같은 모자 달린 스웨터 ‘후디(hoodie)’를 입고 시위를 벌였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워싱턴DC에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결집한 2000여명이 시청 계단에 모여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를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아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한 블레스 데이비스는 “우리는 아직 완전히 인종차별 철폐에 도달하지 못했다”면서 “이 나라에서는 여전히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살해될 수 있다”고 성토했다. 시카고 시위에 나온 타기샤 월터스는 “보통 시위에 나오지 않지만 이번 사건은 내 심금을 울렸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3일 처음으로 이 사건을 언급하며 “내게도 아들이 있었다면 트레이본처럼 됐을 것”이라고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이것은 분명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흑인의 분노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흑인 분리주의 단체인 ‘신 흑표범당(NBPP)’은 자체 웹사이트에 1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고 마틴 을 살해한 히스패닉계 백인 조지 짐머맨(28)을 수배하는 전단을 올렸다.

이번 논란은 지난달 26일 플로리다 샌퍼드의 한 편의점에서 간식을 산 뒤 집으로 돌아가던 마틴이 백인 자경단에게 살해됐지만 정작 범인은 체포도 기소도 되지 않은 데서 시작됐다. 짐머맨은 후드를 뒤집어쓴 마틴이 자신을 위협했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위협을 느꼈을 때 총기사용 같은 치명적인 폭력을 허용한 플로리다주 정당방위법을 들어 그를 풀어줬다. 이 사건 후 정당방위법이 너무 느슨하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플로리다주는 총기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새 법안을 마련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