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3월의 눈’

입력 2012-03-25 18:25


“여보, 당신이유?” 1960년대 변두리 낡은 한옥이 배경인 무대 저편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 낭랑하고 쩌렁했다. 90세를 목전에 둔 노인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맑고 떨림도 늘어짐도 없었다. 계속 이어지는 그의 육성은 230석 극장 구석구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지난 일요일 오후, 연극이나 한 편 보자고 느긋하게 서울역 뒤편 국립극단 무대를 찾았다. “주인공인 원로여배우 예우 차원에서 기획한 연극일 테니 좌석이 충분하겠지 뭐.” 멋대로 생각하고 예매도 없이 찾아 나섰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공연 초부터 10여회 모든 공연이 완전매진이라 표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티켓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객석을 막바지에 간신히 구했다. 이변이었다.

공연 작품인 ‘3월의 눈’ 역시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노부부를 통해 봄눈 녹듯 사라지는 순환의 이치와 무상함을 그린 심란한 것으로 관객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일 거라는 지레짐작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런 엉터리 짐작에도 불구하고 내가 백성희장민호극장을 찾은 것은 한국 연극의 산 증인인 백성희(88) 여사를 뵙고 싶기 때문이었다. 70년을 무대에 선 그분의 쉼 없는 열정이 도대체 어디에서 샘솟나 알고 싶었다. 쉽게 좌절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내 자신, 그 저력과 끈기를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극장은 백 여사와 장민호 선생 두 원로배우의 정신을 기려 국립극단이 그들의 이름을 따서 헌정한 곳이다.

공연 연습 도중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갔건만 무대 위에서 그의 몸놀림은 가벼웠다.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실천해 온 노장의 연기는 관객을 몰입의 경지로 몰아넣었다. 그 연기가 전달한 삶의 척박함과 무상함에 관객들은 감동의 눈물과 기립박수로 보답했다.

그가 퇴장하고 돌아온 분장실. 김소원 오승룡 고은정 박정자 윤소정 김성옥 정영숙 등 10여명의 쟁쟁한 후배 연기인들이 줄을 이어 ‘거목’의 건재에 감사함과 존경을 전했다. 이 각박한 세상에 이 또한 이변이었다.

일생동안 400여 편의 작품을 하면서 잠자는 시간 빼고는 공연연습과 연기를 위해 무대에 서 있었다는 그가 말했다. “연극은 내 삶이에요. 부모님이 반대했던 이 길로 들어서면서 불효를 효도로 갚겠다는 일념으로 무대에 섰어요. 연극 없이는 난 쓸모없는 사람이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이뿐이다, 연극을 존경하자… 이런 무수한 되뇌임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겁니다.”

후배들이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 하는 말에 힘을 얻는다는 그분. “나는 나이와 무관합니다. 죽는 날까지 무대에 서 있을 겁니다. 그게 내 존재 이유인 걸요.” 신문기자 초년병 시절, 58세이던 그를 인터뷰했던 내가 30년 후 여전히 왕성하게 무대에 서 있는 그를 만나게 될 줄이야. 70년간 지칠 줄 모르는 그의 투혼을 정녕 닮고 싶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자문하면서.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