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26일] 새로운 시작

입력 2012-03-25 18:16


찬송: ‘주 달려 죽은 십자가’ 149장(통 147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요한복음 19장 36절




말씀: 시골에 가면 벌레나 곤충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여름철에는 사과나무위로 힘겹게 조금씩 기어서 올라가는 애벌레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애벌레들은 땅속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무려 17년 동안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별 것 아니지만, 애벌레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이겠습니까?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애벌레들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부동자세로 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다 보면 속이 텅 텅 비어 있습니다. 허물을 벗은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힘을 주어도 그의 몸은 쉽게 으스러집니다.

이러한 애벌레의 몸을 보면서 사람들은 애도하거나 안타까워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허물을 벗은 애벌레는 드디어 매미가 되어서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고, 목청껏 노래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이러한 매미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유월절 절기 때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환영하였습니다. 이처럼 뜨거운 환영과 관심 속에서 입성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포도주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원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항 한번 제대로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마치 사과나무에 붙어 있는 애벌레의 허물처럼, 예수님을 초라하고 불쌍한 인생이라고 동정하거나 조롱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초라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생명이 끝이 난 것이 아니었고, 또 하나님의 계획이 끝이 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놀라운 시작입니다. 구원의 시작이요, 축복의 시작입니다. 주의 십자가를 더욱 더 사랑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주의 십자가를 더욱 더 사랑하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영찬 목사(대구 동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