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 D-18] 잘 나가던 ‘진보 아이콘’ 여론조사 조작에 무너져

입력 2012-03-23 19:06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1월 1일 당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무능하고 부패한 구태정치 세력이 몰락하고 참신하고 유능한 진보세력이 정치혁신을 주도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채 3개월이 가기 전에 자신이 구태정치의 ‘주범’으로 몰리며 4·11 총선 출마의 꿈을 접어야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였던 이 공동대표는 2010년 7월 민주노동당 대표직에 오른 이후 정치적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좌파 소수세력’이라는 당 이미지를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확 바꿨고 민주노총 중심의 당 지형도 진보시민단체가 망라된 형태로 변모시켰다. 부유세 도입 정강·정책은 집권여당까지 모방하게 만들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론은 거대 야당이 동참토록 했다. 2011년 말 국회 예산안 강행처리 파동 때는 차분하면서도 강단 있는 언행으로 여당 의원들조차 칭송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진보정당을 제도권에 연착륙시킨 최대 공로자라는 평가가 많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영입돼 여의도에 입성한 뒤 불과 4년의 정치이력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이은 3위권 전국정당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민주당과의 총선 연대 협상에서도 “의석수가 작다고 무조건 양보할 수 없다”며 끝까지 명분을 관철시켰고 수많은 자당 후보들이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하면서 진보정당 최초의 원내교섭 단체 구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일 서울 관악을의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 여론조사 조작 사건이 불거지면서 궁지에 몰렸다.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 진영 내부에서 쏟아지는 사퇴 요구를 ‘재경선 실시’로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공동대표는 23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시종일관 눈물을 참는 모습이었다. 그가 “진보의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린 책임을 지겠다. 야권 단일후보가 이길 수 있다면 몸을 부숴서라도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할 때는 울음이 터질 듯 입술이 떨렸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