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 값 관세 낮춘만큼 인하 유도
입력 2012-03-23 19:07
정부는 다음 달부터 미국산 농수산물 가격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관세 인하율 수준만큼 낮추기로 했다. 또 기름값 안정을 위해 이달 말 석유제품 전자상거래시장을 개설하고, 주유소들이 20%까지 혼합석유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
정부는 23일 과천청사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농산물가격과 석유제품 가격 안정을 적극 유도키로 했다. 정부는 우선 한·미 FTA에 따른 관세 인하가 소비자 판매가격 인하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산 농수산물 가격인하부터 추진키로 했다. 칠레산 와인의 경우 FTA 효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판매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높게 유지되는 등 유통구조 개선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농림수산식품부는 과천청사 회의실에서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농협유통 등 4대 유통업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FTA 발효로 관세율이 낮아지는 품목에 대해 세율 인하 폭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판매가격을 인하키로 의견을 모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격 인하는 FTA 체결 후 수입되는 물량이 본격적으로 풀리는 다음달 초부터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오렌지 등 국내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과일과 일부 고기류부터 가격이 인하될 전망이다. 오렌지는 FTA 발효 전 관세가 50%에서 현재 30%로 20% 포인트 내려갔다. 민간 유통업체들이 가격 인하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정부는 세무조사 등 압박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
지식경제부는 한국거래소에 석유제품현물 전자상거래 시장을 이달 말 조기개설하기로 했다. 정부는 국내 정유 4사가 주유소들과 독점 계약을 맺고 있는 유통구조가 문제라고 보고 전자상거래 시장 도입을 결정했다. 시장이 개설되면 정유사별 가격 비교가 가능해지고,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던 가격결정 구조도 깨질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어느 정도 참여할지, 가격인하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부는 또 주유소들이 한 정유사에서만 독점 공급받는 거래관행을 바꾸기 위해 주유소들이 월 판매량의 20%까지 혼합유를 팔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 정유사와 주유소 간 합의가 되면 비율도 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주유소가 혼합유 판매 여부를 알려야 하는 부담을 덜도록 ‘표시광고 유형고시’의 예시규정은 삭제할 방침이다.
그러나 혼합유 판매를 허용하면 석유제품 품질기준에 대한 원칙이 무너지면서 유사석유 판매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휘발유의 경우 판매가격의 50% 가량이 세금이어서 주유소들이 혼합판매를 가장해 탈세를 하는 불법행위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한 달에 2만ℓ 탱크로리 한 대 분량만 유사석유를 만들어 팔더라도 2000만원 가량의 세금을 탈루할 수 있다”며 “정부가 품질기준을 무너뜨리면 영세 주유소들이 탈세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석철 고세욱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