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집착한 美협상팀의 중대 실수… 북 발사 계획 알고도 2·29 합의문에 ‘위성’ 명시 안 해

입력 2012-03-23 18:52

북한과 베이징 고위급 회담에서 2·29합의를 이끌어낸 미국 협상팀이 당시 북한의 위성 발사 계획을 알고도 제대로 대응을 못해 ‘파국’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거 북한과 미국간 협상에 깊이 관여했던 워싱턴 소식통은 22일(현지시간)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 미국 협상팀이 일찍부터 북한의 위성 발사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면서 “그렇다면 2·29합의문을 작성하면서 ‘어떤 형태의 위성 발사든 이는 협정에 위반된다’는 조항을 협정문에 명시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과 미국이 동시에 발표한 당시 합의문에는 핵과 미사일 발사를 일시 유예(모라토리엄)한다고 돼 있지만 인공위성 발사는 들어가 있지 않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는 주권국의 당연한 권리라며 인공위성 발사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사실상 같은 것이라는 미국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는 “과거 협상을 해보면 북한은 합의사항을 구체적으로 협정문에 못 박아도(nail down) 온갖 논리를 지어내 빠져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미국 국무부가 문제가 불거지자 ‘위성 발사도 2·29합의에 위배된다’고 구두로 여러 차례 경고했다며 북한 측에 잘못을 미루는 것은 나이브한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워싱턴 소재 한 싱크탱크의 연구원도 “여러 정황 상 미국의 구두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김일성 생일 100주년이라는 국내 이벤트를 위해 광명성 3호 위성을 발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협상팀은 이런 징후에도 불구하고 미·북간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 위성 발사 문제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합의가 성공했다고 서둘러 발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김정일 사망 이전에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미국 측에 했느냐는 질문에 “작년 8월부터 지난달 2·29 합의에 이르기까지 3차례에 걸친 북·미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눌런드 대변인의 이런 답변은 북한이 작년 12월에 이미 위성발사 계획을 미국에 통보했다는 일부 보도를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무부 관리 출신으로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을 지낸 에번스 리비어는 브루킹스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김정일 사망 사흘 전인 작년 12월 15일 북한 관리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위성발사 가능성을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도 이미 북한 측 카운터파트들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강력히 경고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