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머니의 손을 보는 마음”… 윤후명 소설집 ‘꽃의 말을 듣다’
입력 2012-03-23 18:09
바닷가에서는 모든 게 흩어진다. 모래가 흩어지고 파도가 흩어진다. 상념도 흩어진다. 고향도 흩어진다. 강원도 강릉 출신의 소설가 윤후명(66)의 신작 소설집 ‘꽃의 말을 듣다’(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첫 단편 ‘강릉/모래의 시(詩)’에서는 ‘방파제 등대’라는 단어도 ‘ㅂ, ㅏ, ㅇ, ㅍ, ㅏ, ㅈ, ㅔ, ㄷ, ㅡ, ㅇ, ㄷ, ㅐ’로 흩어진다. 어머니의 유골을 고향의 바다에 뿌리려고 들린 강릉. 소설은 ‘끝났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탄식조의 이 말은 “누구에게나 고향은 마침표여야 하는데, 내게는 쉼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니다. 어떤 시인의 쉼표는 느낌표를 대신하고 있음을 나는 배웠다”(10쪽)라는 문장으로 연결되면서 쉼표와 마침표 사이에서 흔들리는 화자의 무의식을 드러낸다. 쉼표와 마침표 사이의 거리야말로 고향과 어머니라는 대상을 다른 방식으로 품어 안는 행위일 것이다. 그래서 방파제 등대를 바라보면서 “아무리 가까이 옆으로 다가가도 실체를 보여주지 않고 멀리 비켜나 있곤 하는 듯 했다”(13쪽)라며 그냥 “‘ㅂ, ㅏ, ㅇ, ㅍ, ㅏ, ㅈ, ㅔ, ㄷ, ㅡ, ㅇ, ㄷ, ㅐ’일 뿐이야”라고 대상을 하나하나의 음절로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해체의 방식엔 의미의 유보가 숨어 있다.
9편의 수록작들 모두가 쉼표와 마침표 사이에 숨은 의미를 유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랏빛 소묘’ ‘꽃의 변신’ ‘꽃의 말을 듣다’ 등의 수록작들은 작가가 꽃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최근 3년 동안 동시에 진행한 단편들이다. 하지만 소설집 어디에서도 그 흔한 꽃말 한 번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붙여놓은 꽃말은 진짜 꽃의 말이기에 그는 꽃에서 직접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작가가 듣고자 하는 ‘꽃의 말’이란 무엇인가. 그가 소설집을 통틀어 딱 한 번 ‘받아쓴’ 꽃의 말을 보자. “꽃들은 말한다, 나는 긴장하고 있어요.”(‘보랏빛 소묘(素描)’)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 줄 알았던 꽃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이 말하는 꽃들은 실제의 꽃이 아니라 피어린 고행으로 이루어진 미적 상징물, 즉 ‘의미의 완성’이다. ‘의미의 완성’이라는 꽃의 궁극에 닿기 위해서 ‘긴장’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렇게 에둘러 들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새와 꽃을 말했는데, 나 역시 저번(2007년 김동리문학상 수상작 ‘새의 말을 듣다’)에는 새를 말했고 이번에는 꽃을 말한다. 내게 ‘꽃’이란 무엇일까. 분명 그냥의 ‘화조도(花鳥圖)’는 아니며, ‘꽃’이 아니면 안 되는 필연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늘 식물의 끈질긴 생명력과 생산성에 대해 써왔건만 그것과는 다른 무엇을 찾아 헤매는 방황기라고 해야 한다.”(‘작가의 말’)
다시 첫 수록작 ‘강릉/모래의 시(詩)’로 돌아오면 어머니의 생애와 화자 자신의 유년이 흩뿌려진 강릉의 고향집이 있다. 화자는 어머니가 병상에서 내민 손을 떠올린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손은 내게로 뻗어있다. 그리고 저 높은 어느 곳에 한 송이 꽃을 피워 내게로 전하고 있다. 장마 끝 덩굴식물에서 어머니의 손을 보는 마음이다.”(27쪽)
꽃에서 ‘어머니의 손을 보는 마음’을 어찌 글로 쓰고 붓으로 그릴 수 있으랴. 그래서 의미의 완성은 유보되고 있는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