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아시아인의 미국
입력 2012-03-23 19:18
윌리엄 텐이라는 미국 작가의 단편소설 중 ‘동쪽으로 출발(Eastward Ho)!’이 있다. 핵전쟁 이후 백인과 인디언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미국을 그린 블랙코미디성 SF다. 이 소설에서 인디언들은 다시 북미 대륙의 지배자로 등장한다. 문명화 이전 전통적 생활방식을 유지해온 덕에 미국과 그때까지의 문명세계가 붕괴된 뒤 새롭게 변한 환경에 가장 먼저 적응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백인들은 미국 땅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간신히 미합중국(USA)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 아파치, 세미놀 등 유력 인디언부족들이 사방에서 밀고 들어오자 견디다 못해 선조들의 고향인 유럽으로 떠나기로 한다. 소설 말미에서 미합중국의 최고지도자는 범선 3척이 전부인 함대 사령관에게 명령한다. “동쪽으로 갑시다, 제독. 백인이 두 다리로 꿋꿋이 설 수 있는 곳, 노예가 될까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곳, 옛날 얘기에 나오던 유럽, 희망에 찬 신세계로!”
인디언, 요즘말로 아메리카원주민(Native American)의 기원은 아시아로부터 건너온 몽골인종이라고 한다. 빙하시대 말인 대략 2만년 전부터 파상적으로 베링해를 거쳐 신대륙으로 이주했다는 것. 그런가하면 인디언은 한민족이라는 주장도 있다.
손성태 배재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그는 ‘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 민족의 언어적 증거’라는 논문에서 아즈텍인의 언어인 나와들어가 우리말의 고어(古語)와 대단히 흡사하다고 밝혔다. 어순과 문장의 구조·형태적인 면이 일치하며 발음까지 같은 게 많다는 것.
물론 이는 일설(一說)일 뿐이지만 인디언이 몽골인종, 곧 본질적으로 아시아인이라는 주장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미국이 과거 ‘인디언시대’에 이어 다시 아시아인의 땅이 될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인구집단이 아시아인이라는 미국인구조사국 발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2010년 미국 전체 인구 중 아시아인은 1470만명(4.8%)이지만 그전 10년 동안 45.6%(혼혈 포함)나 급증했다. 미국 전체 인구 증가율(9.7%)의 약 5배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아시아인이 미국의 주류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글쎄 그렇다 해도 백인들이 ‘동쪽으로 출발’을 외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