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⑦ 몸속에 떠도는 시차(時差)라는 문양… 시인 김경주

입력 2012-03-23 18:09


김경주(37) 시인은 오늘의 한국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시인 중 한 명이다. 2010년 시 전문지들이 시인·평론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현대시를 이끌어 갈 젊은 시인’(서정시학), ‘가장 주목해야 할 젊은 시인’(시인세계)으로 선정됐던 그는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우연히도 그가 10대 때 신문배달을 하다가 월급을 떼인 적이 있는 매체였다.

신춘문예 당선으로 1면에 보란 듯이 이름을 실은 그는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1년 동안 인도와 동남아를 떠돌 계획으로 출국한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동남아 일대에 사스가 퍼져 귀국한다. 이런 유목민적인 기질로 인해 그는 지금도 1년에 서너 달 동안 해외를 떠돈다. 그는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돌아왔을 때의 여진’ 즉 시차에 의한 여독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시차(時差)를 겪고 나면 시차(視差)가 생겨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는 시제와 시제 사이에서 핀다

지도에 없는 시간으로의 여행

“마지막으로 그 방의 형광등 수명을 기록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는 건 손톱이 자라고 있다는 느낌과 동일한 거 저녁에 잠들 곳을 찾는다는 건 머리카락과 구름은 같은 성분이라는 거 처음 눈물이라는 것을 가졌을 때는 시제를 이해한다는 느낌 내가 지금껏 이해한 시제는 오한에 걸려 누워 있을 때마다 머리맡에 놓인 숲, 한 사람이 죽으면 태어날 것 같던 구름// (중략)// 오늘 중얼거리던 이방(異邦)은 내가 배운 적 없는 시제에서 피는 또 하나의 시제, 오늘 자신의 수명을 모르는 꽃은 내일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된다”(‘연두의 시제’ 부분)


시차(時差)에 꽂혀 있는 그에게 세상의 지도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가 여행을 갈 때 죽은 시계를 차고 다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은 시계 위에 얹혀 있는 시인으로서 그는 말한다. “제 시의 중요한 코드 중에 휘파람이 있어요. 어렸을 때 대중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불던 휘파람 소리가 신기했어요. 언젠가 태국의 시골로 여행을 갔는데, 화장실에서 휘파람을 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국의 골목에서 그 옛날 아버지가 불던 휘파람을 만날 수 있겠구나. 휘파람은 바람이고 호흡이니 문명이 사라진 뒤에도 지상을 흘러다닐 거잖아요. 그것이 제가 말하는 시차이고 거기서 비롯된 연민이지요.”

그는 온통 시차에 몰두하고 있다. 시차가 새겨놓은 것은 각자의 운명이자 자기 연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짧은 생애는 김경주가 발견한 시차, 즉 우리 자신의 동일성을 깨뜨리며 각자의 내면에 그려진 시차라는 문양으로부터 위로받는다. 그가 말하는 시차란 다른 시간대와 공간의 흐름이 만들어 낸 우리 몸의 낯선 기운 내지 기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미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 앞에 놓인다. 요즘 그는 시차에서 발생하는 현기증을 몸의 다양한 부위, 예컨대 무릎, 눈동자, 손가락, 목선, 쇄골 등으로 옮겨가 언어적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저녁에 무릎, 하고/ 부르면 좋아진다/ 당신의 무릎, 나무의 무릎, 시간의 무릎,/ 무릎은 몸의 파문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살을 맴도는 자리 같은 것이어서/ 저녁에 무릎을 내려놓으면/ 천근의 희미한 소용돌이가 몸을 돌고 돌아온다(‘무릎의 문양’ 부분)

최근 그가 펴낸 산문집 ‘밀어-몸에 관한 시적 몽상’에 따르면 무릎은 살 속에 숨어 있는 마을이다. “무릎을 만질 때마다 마을은 살 속에서 둥글둥글 움직인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무릎 속에 존재하는 이 마을이 몸에서 조금씩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믿고 사는 편이다.”(53쪽)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