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貪慾과 無法이 판치는 업계

입력 2012-03-22 18:07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그레그 스미스 임원이 지난주 독설을 퍼붓고 회사를 떠났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 ‘나는 왜 골드만삭스를 떠나는가’에서 12년간 몸담은 회사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임원들은 고객을 멍청이라고 부르고, 이윤이 적어 빨리 처분해야 할 상품을 고객에게 우선 추천한다. 도덕적으로 파산한 회사에 투자자들은 머지않아 등을 돌릴 것이다.”

정직, 겸손, 팀워크, 최상의 서비스로 무장해야 할 투자은행과는 괴리된 모습이다. 이 회사가 “우리 가치와 문화를 반영하지 않은 개인 주장”이라고 반박했고, 회사를 떠난 이의 편향된 시각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회사가 고객보다는 회사 이익을 우선한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고 언론들은 지적한다. 오죽했으면 이 회사 창립자의 증손자 헨리 골드만 3세가 “기고 내용이 맞다”고 하면서 자신은 골드만삭스에 전혀 투자하지 않는다고 일갈했겠는가.

글로벌 기업답게 처신해야

골드만삭스의 탐욕과 부도덕한 영업 행태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국내 업계도 그에 못지않다. 먼저 금융계를 보자. 신한지주, KB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은행별로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성과급과 배당금을 지급하는 등 ‘돈 잔치’를 벌였다. 그러면서 신규 신용 대출 금리는 올리고, 정기예금 금리는 슬그머니 내렸다. 기준금리가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9개월째 3.25%로 동결됐는데도 말이다. 예대마진 폭을 키워서 이익을 챙기는 은행권을 보고 서민들의 가슴은 미어졌을 것이다.

산업계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가전제품 가격을 담합했다가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두 회사는 지난 2년 동안 담합행위로 3차례나 적발됐다. 가히 상습적이라고 할 만하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거대 기업들이 국내 가전제품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소비자를 기만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두 회사 경영진이 담합행위를 엄벌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소비자들은 사후약방문 식의 대응이라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밝혀진 삼성전자의 공정위 조사활동 방해 실태는 이 회사가 초일류 기업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삼성전자는 공정위 직원들이 수원사업장을 찾아가자 정문을 봉쇄하고 일사불란하게 조사를 방해했다.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컴퓨터를 교체하고, 담당 임원은 출장중이라고 둘러대고, 훗날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식이었다. 사후에 보안규정을 강화하고 “조사 방해를 잘했다”고 자체 평가까지 했다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매출 규모나 세계 시장점유율에서는 분명히 글로벌 기업이 맞지만 준법정신이나 윤리의식 면에서는 구멍가게 수준이나 다름없다.

호미 대신 가래로 막을 건가

급기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삼성 관계자들을 호되게 질책했다고 한다.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도 사장단회의에서 “법과 윤리를 위반한 임직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말했다. 삼성 임직원들은 이번 기회에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룹 오너가 자잘한 사내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세계 경영을 위해 매진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때마침 민주통합당이 재벌을 압박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재벌 범죄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 기업인 횡령·배임에 대한 최저 형량 상향 조정, 대기업 3대 불공정 행위(담합·납품단가 후려치기·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대기업이 스스로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지 않으면 외부에 의해 개혁을 강요당할지 모른다. 호미로 막아도 될 일을 가래로 막을 것인가.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