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기의 溫 시네마-화차] 영화는 현실의 지문이다
입력 2012-03-22 18:31
한 번 잘못 여민 단추가 걷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전개된다. 혹은 인생에서 한 번 잘못 발을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다. 이번 달 카드 값이 연체다. 친구에게 빌릴까도 생각하지만,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근천스러운 생각이 들어 이내 현금서비스를 받는다. 다음 달 청구된 카드 대금이 더 불어있다. 월급으로 메꾸려는데 여전히 모자란다.
월급으로 통하지 않자 카드론으로 돌린다. 이번엔 보증인으로 친구까지 끌어들여 대환대출로 갈아탄다. 합법적 대부업체인 캐시론에서 다시 사채시장의 굴레로 엮여 들어간다. 내 어깨위에 살포시 얹은 샤넬 고양이 같은 연체금은 어느 새 미국산 그래즐리 곰이 되어 나를 신용불량자로 바꿔놓는다.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보이지 않는 행복을 연료로 화차를 태우면서 맹렬하게 지옥으로 돌진한다.
영화 ‘화차’는 1993년 일본에서 발표된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이 2012년 연출했다. 원작은 신용불량이란 덫에 걸린 한 여자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 다른 여자를 죽이고 그녀의 삶으로 갈아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원작 소설과 영화 ‘화차’는 20년의 간극을 두고 있다. 당시 버블경제 속에 감춰진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묘사한 소설 ‘화차’가 21세기 한국 영화 ‘화차’로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관객들이 많이 볼까? 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의 구조상 한국사회가 이미 지나간 일본의 그것과 궤를 일정 부분 같이 한다는 전제를 놓고 보면, 이 물음의 답은 어느 정도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소설을 영화로 치환하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20년의 시차를 둔 당시 일본의 모습을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적용시켜 관객들을 설득하는가’일 것이다. 변영주 감독이 평소 달변가로 소문난 뛰어난 스토리텔러이지만, 이 소설을 시나리오로 옮기기까지 3년이란 시간을 매달린 것을 보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으리라.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온 몸에 각인시킨 강선영(차경선)과 사랑하는 여자를 홀연히 잃어버린 장문호, 그리고 강선영을 쫓는 추적자 김종근까지, 변영주 감독은 이들 캐릭터를 극대화시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스릴러 장르로 변주시킨다.
무엇보다도 ‘화차’에서 관객의 감정선을 증폭시키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이다. 특히 변영주 감독은 배우로서 김민희가 가진 최대치를 끌어 올린다. 섬세한 아름다움에서 사이코패스적 광기를 넘나드는 김민희의 연기 폭은 여성 감독으로서 여성 연기자의 내면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강선영으로 살고 싶은 차경선이 한적한 시골 산장으로 같이 놀러가 강선영을 살해하는 장면에서(살인 장면은 화면에 보여주지 않는다) 김민희가 보여 준 내면의 혼란은 마치 초자아가 자아를 나무라듯 자기 뺨을 후려치듯 어루만지듯 한다. 영화 ‘화차’이야기의 초점은 강선영이 되고 싶은 차경선이다.
즉 현실의 나를 짓누르는 악귀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자아를 부정하며 이루지 못할 허상을 쫓는다. 그것은 곧 차경선이라는 배추벌레가 나비로 변태한 후 남겨 놓은 허물이고, 햇빛과 그림자의 각도가 맞지 않아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모델하우스 전경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다. 그리고 개봉 2주차를 맞는 지금 이러한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객의 점수는 200만 명에 근접했다. 다만 훌륭하게 뽑힌 시나리오만큼의 연출 흐름이 어딘지 모르게 약간 엇박자로 흘러가는 점이 아쉽다.
강선영이 사라짐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문호가 “나를 사랑하기는 했었냐?”라는 물음을 강선영에게 던졌을 때 그녀는 이미 차경선으로 드러난 후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니!”뿐이다. 끝까지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앙드레 바쟁은 말했다. “영화는 현실의 지문이다.”
제10회 서울국제기독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