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일벌레 대만인

입력 2012-03-22 18:18

대만은 우리와 여러 점에서 닮았다. 분단 상황이 그렇고, 좁은 국토에도 경제는 국제사회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란 점도 닮은꼴이다. 51년 내리 집권하던 국민당 정권이 2000년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으로 교체됐다. 그 2년 전인 1998년 우리도 첫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2008년 총통선거에서는 국민당 마잉주(馬英九)가 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정권을 재탈환했다. 선거가 끝난 뒤 천 전 총통은 비자금 유용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은 끝에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대만에서 과로사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고 한다. 일하다 죽는 근로자들이 하나둘 있었는데 지난해에 갑자기 수가 늘었다. 대만 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과로 사망자는 50명가량이다. 2010년보다 무려 4배나 많다. 과로사는 지난해 대만 직장인들이 꼽은 올해의 뉴스가 됐다.

공식통계로 대만 근로자들은 1년에 2200시간을 일한다. 주당 42.3시간인 셈이다. 공휴일이나 연차휴가 등을 고려하면 하루 근무시간은 더 늘어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이는 우리나라의 2193시간을 약간 웃돌고 일본의 1733시간보다는 27%, 부지런하다는 독일 근로자의 1419시간에 비하면 55%나 많다.

대만 현행법상으로는 한 달에 46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시키지 못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기업은 거의 없다. 초과근로가 관습화된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유명 첨단기업들을 대상으로 2010년 실시한 조사에서는 80%가 법정한도를 지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러하자 대만 정부는 법정근로시간 위반에 부과하는 벌금을 올리고 실형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위법 사례를 신고하는 핫라인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12시간 노동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여전하고, 관리직은 연차휴가도 포기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계에선 오래 일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재계는 일하는 분위기가 국제경쟁력 유지와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일 많이 하는 걸로는 결코 대만 못잖은 우리는 주당 40시간 법정근로에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인정한다. 법으로는 대만보다 시간외 근무에 더 후한 셈이다. 이달 말부터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심야근무를 없앤 주간 2교대제를 시범실시할 예정이다. 굳이 과로사 우려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번쯤 우리의 근로 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