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충동에 대한 탐색… ‘비성년 열전’
입력 2012-03-22 18:10
비성년 열전/신해욱/현대문학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이상한 인물이다. 변호사 사무실에 필경사로 채용된 그는 베껴 쓰는 일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훌륭한 인물이지만 이미 베껴 쓴 것을 검토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안 그러고 싶다’며 거절한다. 멜빌이 쓴 ‘안 그러고 싶다’의 영어 원문은 ‘I would prefer not to’인데 실제로는 ‘I would not prefer to’가 일반적인 표현이다. ‘하지 않다’가 아닌, ‘않음을 하다’로 만드는 ‘not’의 위치에 따라 바틀리의 특유한 표현법인, 부정과 긍정으로 영토화되지 않는 제3지대가 탄생하는 것이다.
시인 신해욱(38)의 에세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not’이 의미하는 ‘아닐 비(非)’야말로 습관화된 관례와 상식과 규율에 대한 거절인 동시에 바틀비 특유의 수동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신해욱은 ‘비성년’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탐험을 계속한다.
신해욱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해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게 된 ‘성년’과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으되 이제 곧 그렇게 될 이들인 ‘미성년’ 사이엔 ‘비성년’이라는 새로운 자아가 존재한다. 그들이 바로 ‘바틀비’이며 미국 소설가 제롬 샐린저의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이며 소설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보통사람들과 생태적으로 다른 우주에 살았던 존재인 동시에 부조리한 삶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 누구와도 합쳐질 수 없어 스스로 소외를 선택했던 인물이다.
“미성숙한 인간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란다. 하지만 성숙한 인간은 같은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려고 하지. 선생은 콜필드의 미성숙을 부드럽게 타이르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아무래도 콜필드는 고귀하게 죽는 쪽에도, 묵묵하게 살아가는 쪽에도, 혹은 위악적으로 타락하는 쪽에도 속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가 스스로 고귀해지려는 순간 유령과 아이들은 사라진다. 파수꾼을 잃는 셈이니까.”(67쪽-비타민이라는 미들네임 홀든 콜필드)
신해욱은 ‘작가의 말’에서 “나의 주인공들이 열어놓은 세계를 배회하는 동안 나는 ‘나는 나의 이야기를 전하도록 할게’라는 문장을 나의 것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그만큼 변했다”며 “꼭 그만큼 나는 예정됐던 것과는 다른 현재에 속해 있다고 해도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에세이는 2010년 3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월간 ‘현대문학’에 14회에 걸쳐 연재됐으며 소설, 영화, 만화를 넘나드는 감성적 글쓰기로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