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택 (13) “담배 안 피우게 해주세요” 기도 한마디에…
입력 2012-03-22 18:18
SBS 예술단장, 참으로 황홀한 자리였다. 하지만 그 자리는 절대로 내 실력으로, 내 공로로 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만들어진 자리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과분한 축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가시적으로 감사를 표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때 머릿속에서 떠오른 게 아내가 찬양 속에서 ‘무너졌던’ 그 기도원이었다.
아내와 나는 매주 화요일 그 기도원을 찾기로 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아무리 피곤해도, 설사 몸이 아파도 화요일 저녁만큼은 기도원에 가기로 했다. 기도원에 가면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맨 앞자리를 잡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우리 부부는 일단 앞자리에 앉아야 은혜를 많이 받는다는 신념이었다. 가끔 목사님의 침이 얼굴이 튀기도 했지만 그래도 관계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내가 어찌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기도에 몰두하지만 나는 두 마디만 하고 나면 할 말이 없어졌다. 옆에선 회개한다고, 감사하다고, 소원을 들어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해대는데, 나는 벙어리 신세였다. ‘에라 모르겠다. 주기도문이나 외우자’며 한 시간 동안 주기도만 반복한 적도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만 한 시간 동안 반복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은 어쩌나 하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데,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근엄한 얼굴의 내가 한 손에는 성경책을 펼쳐들고 다른 한 손에는 불붙은 담배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곤 담배 한 모금 빨고 성경 한 구절 읽고, 다시 담배 한 모금 빨고 성경 한 구절 읽고 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우습기도 하면서 ‘이건 아니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웅얼거리듯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뭔가 어색하네요. 하나님 저 담배 안 피우게 해주세요.”
단 한 마디의 기도였다. 근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정말 내가 담배를 안 피우게 된 것이다. 하루 세 갑씩 피우면서 주머니에 두세 갑, 집에 두세 보루씩 여분이 있어야만 정서적으로 안정됐던 내가 담배를 멀리하게 된 것이다. 구수하기만 했던 담배 연기가 오히려 역겨워졌다. 처음엔 속이 안 좋아서 그런가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오랜 기간 동지였던, 평생 동지로 여겼던 담배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건강에 안 좋다고 끊은 것도 아니고, 나의 결심으로 끊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담배와 성경책을 같이 들고 있는 내 꼴이 우스워서 그저 지나가는 식으로 기도 한 번 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들어주셨다. 철부지 신자의 짤막한 기도를 외면치 않으신 좋으신 하나님이셨다.
나는 요즘도 그때를 생각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과 능력을 느낀다. 그리고 한 손에 성경책을, 다른 한 손에 담배를 쥐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하나님 한 손에는 말씀의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쥐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이른바 담배사건은 나로 하여금 기도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다. 그리고 기도생활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나의 작은 신음소리도 들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결코 기도에 소홀할 수 없었다. 아내와 기도원으로 향하는 발길이 점점 가볍고 즐거워졌다. 그렇게 족히 일년은 매주 화요일 기도원 출석을 계속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원장님이 반주자가 없다고 걱정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럼 제가 하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반주자를 자원했다. 쉽지 않을 일을 나는 너무나 쉽게 떠맡았다. 반주자를 맡으면 한동안은 계속해야 하는데, 내 입에서는 거리낌 없이 ‘내가 하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성령이 주장하신 말이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