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내미는 바늘끝에 ‘기분좋게 찔리는 쾌감’… ‘일침’
입력 2012-03-22 18:04
일침/정민 (김영사·14000원)
추사 김정희는 좀처럼 남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남이 한 것은 헐고, 제 것만 최고로 쳤다는 것이다. 아집과 독선에 찬 언행으로 남에게 많은 상처를 입힌 추사의 단골 카드는 “내가 중국에 갔을 때 실물을 봤는데”라는 말이라고 지적한 이는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이다. 그 한마디면 실물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꼬리를 내리기 마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추사가 북청 유배에서 풀려 강원도 지역을 지날 때, 옥수수밭에 둘린 초가의 마루에 늙은 부부가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추사는 묻고 노인은 대답한다. “올해 몇이우?” “일흔입지요.” “서울은 가봤소?” “웬걸 입쇼, 관청에도 못 가봤는데요.” “그래 뭘 먹고 사시오?” “옥수수 먹고 삽니다.”
추사는 순간 마음이 아스라해졌다. 그래서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남북을 부평처럼 떠돌고, 비바람에 휘날렸다. 노인을 보고 노인의 말을 듣고 나니, 나도 몰래 망연자실해졌다.”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하는 옛 선비들의 시구는 비록 네 글자밖에 안되는 한자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촌철살인의 일침이요, 간명한 통찰이다. 정 교수가 내미는 바늘 끝엔 ‘기분 좋게 찔리는 쾌감’이 묻어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