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역에 또 불붙은 ‘인종차별 논란’… 백인 자경단의 무고한 10대 흑인소년 ‘묻지마 사살’

입력 2012-03-21 19:25

집 근처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가지고 나오던 흑인 소년이 주변을 순찰하던 백인 남성의 총에 맞아 숨졌다. 무고한 소년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살됐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미국 사회에 인종 차별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있다.

◇흑인이라서 쐈나=지난달 26일 저녁(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샌포드에 사는 고교생 트레이본 마틴(17)은 편의점에서 초콜릿과 아이스티를 사가지고 나오다가 백인 남성의 추격을 받았다. 마틴은 집에서 농구를 보다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편의점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근처를 순찰하던 마을 자경단원 조지 짐머맨(28)은 무장하지 않은 소년의 뒤를 쫓아가 총을 쐈고 소년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경찰이 바로 출동했으나 짐머맨은 체포되지도 기소되지도 않았다. 수상한 흑인과 다투다가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쐈다고 주장했고, 경찰이 이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당장 인종차별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흑인 인권단체에서는 “짐머맨이 흑인이었다면 즉시 체포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년의 어머니 사브리나 풀턴은 TV에 나와 “아들이 피부색 때문에 살해됐다”고 울먹였다. 백악관조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인종문제 논란 연루를 우려한 듯 “지역문제일 뿐”이라며 이 사건을 외면했다.

그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마틴의 죽음을 재조사하라는 청원이 이어졌다. 55만건이 넘었다.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 가수 위클리프 진 등 유명인도 참여했다. 결국 미국 법무부는 19일 이 사건을 재조사를 하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20일 보도했다.

◇결정적 단서 확보=단서는 미 법무부가 20일 공개한 ‘마틴이 사망 직전 여자친구와 나눈 통화기록’이었다. “그가 내 바로 뒤에 있어. 또 그가 내 바로 뒤에 따라왔어. 뛰지 않을 거야. 그냥 빨리 걸을 거야.” 또 이런 내용도 녹음돼 있다. “당신 왜 나를 따라오는 거야?” 이어 전화는 끊겼다. 그 때가 7시12분이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7시17분. 그 사이에 마틴은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짐머맨이 사건 당시 911에 전화한 기록도 공개됐다.

그는 911에 “마약에 관련된 듯한 흑인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그를 추격 중”이라고 경찰 배치를 요청했다. 그는 추격하지 말라는 911의 충고를 무시하고 마틴을 따라가 결국 총을 쐈다.

짐머맨의 아버지는 아들이 마틴을 쫓지 않았다고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두 통화기록 결과 소년을 따라간 것으로 밝혀졌다. 신문은 이번 사건이 인종차별 논란뿐 아니라 총기남용 논란도 낳고 있다고 전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