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임미정] 나사와 못
입력 2012-03-21 19:30
기계나 큰 구조물들을 보면 나사나 못 같은 것이 많다. 그것들은 각기 다른 부분을 하나로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한다. 국가적으로 보면 외교관의 역할을 떠올릴 수 있겠고, 문화행사에 있어서는 주인공과 더불어 뒤에서 역할을 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지금 머무는 코스타리카 수도 산호세에서 이런 나사와 못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다. 코스타리카 국제예술제를 열면서 수교 50주년을 맞은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했는데, 이 행사에 클래식을 비롯해 국악과 태권도, 비보이, 풍물패 등 70여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당연히 도식화된 매뉴얼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조정능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개개인의 공연내용은 물론 공연 전 리허설 방식 및 긴장해소 방식까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생활방식이나 음식에 대한 기호 등은 또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른다. 이번 예술제의 스케줄 조정을 맡은 관계자는 농반 진반으로 다시는 이런 업무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를 맞추다 보니 너무 힘들다고 한숨이다.
가령 식사예약을 해놓고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단원이 갑자기 컨디션 조정을 위해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몇 명이 그렇게 하면 차량과 식당예약을 바꾸고, 리허설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 달라진 일정에 따라 무대, 음향, 조명감독의 스케줄을 줄줄이 바꿔야 한다. 나사와 못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힘들어도 모든 멤버가 편안하게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나사와 못의 역할은 국가 간의 일에도 더없이 중요하다. 특히 외교관들은 가장 공식적으로 그 역할을 하게 되는데, 1950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보잘것없는 나라 ‘꼬레아’가 지금 반열에 올라선 것은 국제 사회에서 수많은 나사와 못을 효과적으로 연결한 결과다.
특히 코스타리카에서 확인하는 한국의 위상은 어깨를 우쭐하고도 넉넉히 남는 것이었다. 지난 세월 우리 외교관들이 꾸준히 나사와 못으로 본국과 파견국가의 관계를 위해 노력한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곳 코스타리카에서 임기를 마치고 지난달 귀국한 권태면 대사는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다리 역할만이 아닌, 이 나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노력함으로써 두 나라 관계를 질적으로 격상시켰다는 이야기다. 외교관이라는 나사와 못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삶에서 독불장군은 없음을 알게 된다. 연주자, 외교관, 무대감독, 여행코디네이터, 운전기사, 무대스태프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자기 무대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 미래를 위해 의미 있는 나사와 못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임미정(한세대 교수·하나를위한음악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