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사고 전말·의문점… 직원 100여명이 알고 있는 사실을 본사는 몰랐었나

입력 2012-03-21 19:10


고리원전1호기 정전사고에서는 현장 직원들의 안일함과 감독 부실, 현장 책임자들의 안전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줬다. 원자력안전위원회(안전위)는 21일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문병위 고리1발전소장이 은폐를 주도한 것으로 결론 냈지만 윗선 보고 여부와 감독기관의 부실 감시 등 적잖은 의문점이 남는다.

안전위에 따르면 지난달 9일 오후 8시34분 고리1호기의 모든 전원이 끊기는 블랙아웃 상태가 됐다. 보호계전기 점검을 하던 작업자가 실수로 2개 전력선을 한꺼번에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이 다급하게 ‘시험중지’를 외쳤지만 이미 버튼을 누른 뒤였다. 전력이 끊기면 자동으로 가동이 돼야 할 비상디젤발전기는 고장이 나 먹통이었고, 나머지 비상발전기 1대는 점검차 분해된 상태였다. 수동비상발전기는 현장직원들이 작동법을 몰라 가동하지 못했다.

전원이 끊기자 원자로 내부의 잔열제거를 위해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펌프도 작동을 멈추면서 원자로 냉각수는 36.9도에서 58.3도로, 사용후핵연료는 21도에서 21.5도로 상승했다. 다행히 12분 만에 전력공급이 재개되면서 위험한 상황은 넘겼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 정전사고를 본 문 전 고리1발전소장은 급히 전력을 복구하고 현장에 있던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안전대책을 발표하고 결의대회를 한 날이었다. 안전대책을 발표한 마당에 정전사고가 났으니 책임 문제가 불거질 게 뻔한 상황이었다. 결국 사고를 숨기기로 하고 고리원자력본부장까지 속였다. 사고 후 10∼11일 비상발전기 2대가 모두 가동 불가능한 상태에서 핵연료 인출 등 위험한 정비가 계속됐다. 운영지침에 따르면 최소 1개의 외부전원과 1대의 비상디젤발전기가 운전 가능한 상태에서 핵연료를 인출해 이송하도록 돼 있다.

사고 10일 후인 지난달 20일 김수근 부산시의원은 저녁식사 중 근처에서 원전 작업자들이 “정전이 됐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큰 사고를 직감한 김 의원은 지난 8일 고리원전 측에 사실확인을 요구했고, 뒤늦게 사실을 확인한 고리원자력본부장이 한수원 본사에 보고함으로써 한 달여 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안전위는 문 전 소장을 사고은폐의 몸통으로 지목했으나 과연 100명이 알고 있는 사실을 고리원전본부나 한수원 본사에서 몰랐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또 현지에 파견돼 감독업무를 맡고 있는 안전위와 원자력안전기술원 주재원들도 사고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부실감독’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