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사모의 땅끝 일기] 꿈을 위해서라면

입력 2012-03-21 21:06


“이거∼ 이거∼ 믿을 수 있는 거야?”

“아따! 한번 믿어보시라고요∼∼.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꿈을 꾸고 열심히 노력해 보라고 하셨잖아요.”

이렇게 큰소리를 치며 가위를 들고 보채는 예슬이를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우리집에서 가장 큰 거울 앞에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앉았습니다. 제 머리에 물을 뿌리고 가위를 잡더니 어쩜 그렇게도 빨리 제 앞머리를 잘라내는지 저는 속으로 ‘어머나 어머나’를 열 번은 외쳤을 겁니다.

딸 가위질에 엉망이 된 머리

“오메! 오른쪽이 째깐 짧은디, 오메 오메 왼쪽이 너무 짧아졌어야. 어찌까….”

결국 제 앞머리는 눈썹 위 5㎝가 되어 그것도 사선으로 완전 맹구머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옆에 있던 아이들도 소리를 지르며 웃다가 방바닥에 뒹굴고 저도 제 머리지만 너무 우스워서 배꼽이 튀어나올 정도로 웃었습니다. 하지만 전 사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앞머리에 맞추어 옆머리를 어떻게 잘라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예슬이는 저를 한번 쳐다보더니 “사모님 빨리 미장원으로 고! 고!”를 외쳤습니다. 제 머리를 보고 저도 우스운지 큰소리로도 웃지 못하고 “끽 끽 끽” 웃으면서 “사모님 죄송해요. 잘 자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인터넷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해 보는 것이 쪼깐 차이가 있더라고요!”

꿈을 키워보겠다는 딸아이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고 정말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더구나 며칠 후 일 년에 한 번 있는 친구들과의 모임이 서울에서 있어 그러잖아도 내심 입고갈 옷이며 가방이며 이래저래 설레고 잠도 설치고 있었는데 이건 참 아이고….

어차피 잘린 머리 느긋하게 점심이나 먹고 미장원 가자며 아이들은 자기들도 따라가서 잘 자를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나 뭐라나. 아무튼 라면 끓이고 묵은 지 넣고 콩나물도 넣고 식은 밥도 좀 넣고 저희들이 부르는 식으로 케밥을 만들어 배부르게 먹고 나니 기분도 한결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외출이랍시고 아이들과 줄줄이 집을 나서 룰루랄라 미장원 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미장원 주인 아주머니가 제 모습을 보더니 할 말을 잃고 말했습니다. “오메 오메 서울 간다고 식구들 몰래 보따리 싸가지고 나가다가 오빠한테 걸려서 머리가 잘린 사람처럼 우짜다가 요래 머리가 되어 버렸다요 사모님?” “그러게요. 저 머리 예쁘게 다듬어 주세요. 꼭 예쁘게요.” 우리 모두는 하하 호호 웃으며 별로 다듬을 머리도 없는 제 머리카락을 예쁘게(?) 자르고 일어섰습니다.

그러고 보니 긴머리 보다는 훨씬 어려보이는 듯하기도 합니다. 함께 응원나온 아이들과 아이스크림 한 개씩 입에 물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서울 갈 걱정보다는 앞머리 옆머리도 많이 짧아지고 뒷머리도 많이 짧아진데 대해 남편은 뭐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늘 저의 긴 머리에 환상을 갖고 있는 남편이기에 놀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방문을 열며 “쨘 십년 젊어진 각시가 왔어요”했더니 “우와 예쁜데! 잘 잘랐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짧은 머리를 해 보겠어. 우리 딸래미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는걸.” 아! 정말 좋은 남편입니다.

아직도 가위들고 식구들 유혹

이렇게 미용사건은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며칠 지나니 자연스러워져서 앞머리만 빼면 볼 만합니다.

서울도 다녀오고 일주일이 지나니 더 예뻐진 것 같습니다. 우리 예슬이는 여전히 미용실 원장님을 꿈꾸며 지금도 아이들의 머리를 잘라 주겠다고, 이번에는 믿어보라고 걱정 말라며 가위를 들고 우리 모두를 유혹합니다. 우리 모든 식구들은 예슬이의 유혹을 잘 이겨내지만 아무래도 저는 딸래미의 꿈을 위해 한 번 더 유혹에 넘어가 머리를 잘라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머리카락이 조금만 더 자라면요. 오늘도 땅끝에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