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택 (12) 하나님의 통 크신 선물 ‘SBS 예술단장 승격’
입력 2012-03-21 18:12
“김 단장, 사실은 오래 전에 이미 자네를 단장으로 내정했다네. 하지만 혹시 자네가 거절할까봐 공개모집을 했지. 그랬더니 자네 말고도 여섯 명이나 지원했더군.”
기가 막힐 일이었다. 내가 1991년 SBS(서울방송) 개국 때 관현악단장에 뽑힌 것도 과분한데, 이미 내정까지 돼 있었다는 방송국 고위층의 말을 듣고 보니 도대체 어쩐 영문인지 몰랐다. 내 실력이나 관록으로 볼 때 분명히 분에 넘치는 자리였다. 게다가 방송계가 어떤 곳인가. 인맥과 로비가 실력에 우선하는 곳이 아닌가. 가수들과 친하긴 하지만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실력자로는 아는 사람이 없었고, 어느 누구한테 로비라곤 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 맞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곰곰 하던 중에 나는 답을 찾았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고는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있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줄 선물을 한 손에 들고서 극장식 식당이라는 유혹으로 나를 시험하신 것이었다. 내가 시험을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까 아내를 붙여서 극복하게 해주신 것이었다. 내 눈에선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를 향한 그분의 인내와 안타까움을 생각하면서 나는 앞으로 무조건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꿈에도 그리던 자리를 이렇게 쉽게 얻을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8년 정도 MBC 악단의 팀장으로 일하면서 계속 단장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출근할 때 MBC 사옥을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악단장을 맡아서 원하는 음악을 하게 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근데 언젠가부터 ‘뒤로 돌아라’라는 암시 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나의 나쁜 행동과 습성에서 벗어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했다. 근데 그게 내 뒤로 빤히 보이는 SBS였다니….
당시 나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회개는 하면서도 번번이 죄를 향해 손을 내밀곤 했다. 회개를 했으면 반복해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나란 사람은 워낙 강하지 못했다. 나의 죄성은 나를 거듭 죄의 길로 몰아가려 했다.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나는 성경 속 한 구절을 위로로 삼았다. ‘탕자의 비유’가 나오는 누가복음 15장 17절의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의 ‘이에 돌이켜’라는 말이다.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내가 연약해 자꾸만 헛발을 디디지만 그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그 길에서 돌이킬 수 있게 해주시는 은혜였다. 그리고 돌이킨 것만으로도 가상히 여기고 회복시켜주시는 은혜였다. 이 어찌 감격스럽지 않은가.
관현악단장을 맡고서 몇 년 뒤 나는 예술단장으로 승격됐다. 관현악단에다 합창단과 무용단을 통합해 예술단으로 만들면서 첫 단장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SBS의 정식 직원으로 발령을 내줬다. 이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예로부터 악단장을 포함한 단원들은 계약직이었다.
참으로 감당키 어려운 축복이었다. 나는 그저 부지런히 전도하고 단원들을 위해 기도한 것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선물을 안겨주셨다. 그때 나는 분명한 생각을 갖게 됐다. 보잘것없는 내게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안기신 건 단 한 가지 ‘이에 돌이켰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을.
지금도 나는 곧잘 넘어지고 깨진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에 돌이키려고’ 나름대로 노력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나의 커다란 행동이나 단단한 결심, 빛나는 업적이 필요 없는 것 같다. 단지 있는 그 자리에서 잠시 돌이키기만 해도 그분은 갸륵하게 여기시는 것 같다.
하나님은 진짜 통이 크신 분이다. 한 번 주셨다 하면 쩨쩨하게 주시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넘치도록 복을 부어주시는 분,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