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 개입 부인… 靑과 사전교감 의혹은 더 증폭
입력 2012-03-20 22:16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컴퓨터 자료 삭제 지시를 시인함에 따라 민간인 불법사찰 은폐의혹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 전 비서관은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에게 자료삭제를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최종석 전 행정관의 직속상관이다. 그는 청와대의 증거인멸 개입 배후로 의심받았다. 기자회견으로 이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고, 자료삭제 지시는 최 전 행정관의 단독 범행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그가 왜 이 시점에 기자회견을 자청했는지를 놓고 여러 의혹이 제기된다. 이 전 비서관은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을 적극 부인했다. 총리실의 특수활동비 상납이나 민정수석실 개입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조직적인 개입이나 정권 차원의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회정책수석실에 소속됐던 그가 민정수석실의 개입까지 부인하고 나선 것으로 볼 때 청와대 측과 사전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고용노사비서관실과 더불어 청와대 개입의 핵심 축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 전 비서관은 또 본인의 책임 아래 자료삭제를 지시했다지만 청와대 소속 비서관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비서관실 주무관에게 지시했다는 사실 자체가 청와대 개입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것이어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장 전 주무관이 검찰에 소환된 날에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도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기자회견 방식도 일문일답이 아닌 일방적인 발표였다. 이 전 비서관은 15분 정도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뒤 취재진 질문을 받지도 않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이 없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2010년 검찰수사 당시 공소사실에 포함됐으며 불법사찰에 가담한 이인규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등 4명이 기소돼 1·2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증거인멸에 대한 반박논리도 약하다. 그는 “하드디스크에 공무원 감찰관련 중요 자료와 개인 신상 정보가 들어 있어서 외부에 유출되면 국정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자료삭제는 검찰의 압수수색 이틀 전에 이뤄졌다. 검찰의 압수물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민주통합당을 비판한 점도 주목된다. 이 전 비서관은 한명숙 대표를 거론하며 불법사찰 주장은 선거를 의식한 정치공작이라고 몰아세웠다. 총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여권이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도록 권유했을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오는 이유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